항목 ID | GC0173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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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秉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범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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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7년![]() |
출생지 | 이병연 출생지 -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운곡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연안 |
대표 경력 | 『조선환여승람』 집필 |
[정의]
일제 강점기 『조선환여승람』을 집필한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유학자.
[개설]
이병연(李秉延)[1894~1977]은 우리나라 129개 군의 방대한 읍지 자료인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을 집필하고자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리·풍속·인물·산천·고적 등을 49조목으로 구분하여 자료를 수집·정리하였다. 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이후 가장 방대한 지리지 편찬 사업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완간을 보지 못하였다. 20세기에 들어 유교 사상의 기반이 흔들리자 이병연은 유학자로서 읍지 편찬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가계]
초명은 병익, 자는 백윤, 호는 송석거사이다. 아버지는 석남공 이원이다.
[활동 사항]
이병연은 1894년(고종 31) 공주군 탄천면 운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원에게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기 시작하여 이후 『효경(孝經)』, 『동몽선습(童蒙先習)』 등을 읽었다. 1904년(고종 41) 11세가 되던 해에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워지자 숙부 이석에게 가서 『통감(通鑑)』을 읽었다. 가문의 세가 더욱 약해지자 아버지는 호남 지역으로 가서 객지 생활을 했다고 한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인 이교헌에게서 『통감』을 공부했다. 이병연은 자신의 일기에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공부하는 시기를 놓쳤다는 사실을 자주 언급하였다.
이병연은 일생 동안 연안이씨(延安李氏) 선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선조가 바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중심 인물이었던 연평부원군 이귀(李貴)였다. 전라북도 장성군 북이면에 이귀를 모신 오산사가 있었는데, 원래는 이귀를 주벽으로 하고 나머지 위치가 정해졌다. 그런데 1961년 이런 위치가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오산사로 달려가 이귀의 위패를 가지고 돌아올 정도로 강인하였다. 이병연은 이후 성균관장과 상의하고 다시 위패를 봉안하는 의식을 올렸다.
[저술 및 작품]
이병연은 30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리·풍속·인물·산천·고적 등을 49조목으로 구분하여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조선환여승람』을 집필하였다. 원래는 『인물승람』2책을 자신의 명의로 출간할 계획이었으나 불허되자 여기에 산천과 풍토를 추가하여 『환여승람』이라고 개명하고 허가 신청을 하였다. 1929년 11월 발간 허가 신청을 받았는데, 윤용구와 민경호가 서문을, 김윤환과 이병연이 각각 발문을 쓰고 안정여가 추가로 발문을 쓰면서 일부가 간행되었다. 또한 문집으로 2권 2책의 『송석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