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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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益恒旌閭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Choe Ikha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 89-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박범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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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익공 계통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17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 8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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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이상익 |
관리자 | 이상익 |
문화재 지정번호 | 공주시 유형문화유산 |
문화재 지정일 | 1997년 6월 5일![]() |
문화재 지정일 | 2024년 5월 17일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익항의 정려.
최익항(崔益恒)의 자는 원구(元久)이다. 1684년(숙종 10) 최준(崔浚)[1656~1722]과 진주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매우 착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주위에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해, 부친이 병환 중에 배[혹은 감]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한겨울이라서 산속을 헤매도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과일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으며, 다행히 그것을 가져다가 부친에게 드리니 곧 병이 나았다고 한다. 또한 최익항은 부모를 위하여 마곡사 부근에서 약초를 캐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는데 어디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곤경에서 구해 주고 자신의 등에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공주에서 천안 방향의 국도 23호선에서 약 20.76㎞ 거리에 정안 교차로가 있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직진하여 표지판을 따라가면 운궁리가 나온다. 최익항 정려는 마을 동쪽 끝에 있다.
최익항의 효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1817년(순조 17) 호조정랑에 증직되었고, 명정을 받아 그해에 정려를 건립하였다. 중수기에 따르면 1905년(고종 42)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고, 1995년에는 최익항의 8세손인 최경규(崔敬奎)에 의해 중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순조실록』 1817년 3월 14일 기사를 통해 “공주의 최익항과 그 아들 최도관, 최적관, 최원관, 최운관 5부자가 모두 효행이 뛰어나니 최익항은 정려하고 도관과 적관은 증직하며, 원관, 운관은 복호하기를 청하니 왕이 이에 따랐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효행등제등록(孝行等第謄錄)』에도 최도관과 최적관 형제가 세금과 잡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도 두 형제가 효행으로 쌀을 하사받았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호서읍지』에도 최익항의 명정과 도관, 적관의 증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최익항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각 1칸으로, 익공 계통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방형의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사면은 홍살로 처리하였다. 정려 내부에는 1817년에 명정받은 효자 최익항의 정려임을 알려주는 ‘효자증통덕랑호조정랑최익항지려숭정기원후사정축삼월일명정(孝子贈通德郞戶曹正郞崔益恒之閭崇禎紀元後四丁丑三月日命旌)’이라고 쓰인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최익항의 명정 현판 뒤쪽에는 ‘효자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최식지려(孝子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崔湜之閭)’라고 쓰여 있고, 오른쪽 기둥에는 1995년 8월 최익항의 8세손인 최경규(崔敬奎)가 최익항 정려를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편액이 걸려 있다.
최익항 정려 둘레를 쇠창살로 막아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최익항 정려는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2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