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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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崇義祠 |
영어음역 | Sunguisa |
영어의미역 | Shrine of Yi Cheolyeong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골길 78-10[상왕동 331-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현정,박범 |
성격 | 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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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양식 |
건립시기/일시 | 1971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골길 78-10[상왕동 331-3]![]()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성암 이철영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
[변천]
숭의사는 초려 이유태의 9세손이었던 성암(醒菴) 이철영(李喆榮)[1867~1919]의 항일 행적과 덕행을 기리고,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사우이다. 이철영(李喆榮)은 임헌회의 문인인 유대원(柳大源)[1834~190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904년(고종 41) 일제가 철도를 부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림들과 함께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 체결에 대해서는 『기의려문(起義旅文)』을 지어 의병 모집을 시도하였다. 1909년(순종 3) 일제가 호적 입적을 강요하였을 때는 「치일국정부서(致日國政府書)」를 작성해 천황(天皇)에게 보내는 등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10년간 수차례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순국하였다. 항일 애국의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12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서훈되었고, 2012년 4월 공주시의 지원으로 이철영(李喆榮)을 추모하는 묘정비(廟庭碑)가 건립되었다.
숭의사의 건립이 처음으로 발의된 것은 1968년 3월이다. 당시 공주향교의 전교 정인상 등 공주 유림 51명이 각 향교와 서원에 통문을 돌려 이철영의 덕행과 행적을 기리기리는 사우를 세울 것을 발의하였다. 이에 전국의 18개 향교, 서원, 사우가 사우 건립에 찬성하는 답신을 보내 왔고, 국비와 도비, 그리고 뜻 있는 후손들의 의연금을 모아 1971년 사우를 신축하였다. 1981년에는 ‘숭의사보존사업회’가 발족하였으며 1983년에 사우의 아래쪽에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형태]
숭의사는 사우와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양식이다. 삼문이 있으며,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사우의 아래쪽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구인당(求仁堂)이 있다.
[현황]
숭의사는 2002년 국가보훈처의 국가현충시설 제20-1-6호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음력 3월 17일 유림들이 주관하여 추모 제례(祭禮)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숭의사는 공주의 사족이었던 초려 이유태 선생의 경주이씨 집안 문중 활동과 유림활동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또한 사우가 세워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