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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087
한자 金洙喆
영어음역 Gim Sucheol
영어의미역 Gim Suche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형국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
성별
생년 1894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미상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수철은 1894년(고종 31)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 공주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김수철은 이에 자극받아 영명학교 교사인 김현경(金賢卿), 김관회·이규상·현언동과 졸업생 김사현, 재학생 오익표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당시 김수철은 기독교계의 사립 공주 영명학교의 조수로 있었으며 만세운동에서 배포할 「독립선언서」 등 준비물품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관회로부터 연락을 받은 김수철을 통해 유관순(柳寬順)의 사촌오빠인 유준석(柳俊錫)과 윤봉균(尹鳳均), 노명우(盧明愚), 강연(姜沇) 등 영명학교 학생들이 학교의 등사판을 사용해 「독립선언서」 1,000장을 인쇄하였다. 또한 김수철은 3월 29일 이규남(李圭南)을 만나 만세 운동에서 사용할 태극기 제작을 의뢰하였다. 이규남이 자택에서 제작한 태극기 4장 중 3장은 김수철에게 전달되었고, 나머지 1장은 김현경에게 전달되었다.

이처럼 체계적으로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던 김수철과 동료들은 1919년 4월 1일 공주 장날을 이용해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매일신보』 1919년 9월 3일 자 기사에 따르면 김수철, 김현경, 이규상 등은 유죄로, 현운동, 김사현, 오익표 등은 무죄로 판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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