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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리 고분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36
한자 校村里古墳群
영어의미역 Ancient Tombs in Gyochon-ri
이칭/별칭 교동 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남석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굴식 돌방무덤
건립시기/연도 백제
소재지 주소 충정남도 공주시 교동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위치]

교촌리 고분군은 공주시의 서쪽에 있는 교동 향교골에 위치한다. 북쪽의 송산리 고개를 경계로 무령왕릉이 위치한 송산리 고분군과 단절된 형태를 이루는데, 지형상으로는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분군이 확인된 지역은 해발 95m 야산의 남동사면 중하단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교촌리 고분은 1930년대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에 의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고분의 위치 파악도 구체적이지 못한 채 2호 전축분은 인위적인 파괴 분으로, 3호 전축분은 미완성의 고분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약 80년 후인 2018년에 과거 조사를 바탕으로 발굴 조사를 다시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구체적인 전실묘의 위치와 석축단 시설[일제 강점기 2호], 전축분[일제 강점기 3호], 석실분이 확인되었다.

[형태]

기존에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교촌리 고분군에서 조사된 고분은 석축의 합장형 돌방무덤 2기와 벽돌의 미완성 고분 2기가 확인된 것으로 전한다. 이 가운데 기록에서 확인되는 고분은 조사분인 1호분과 4호분, 6호의 석축묘와 3호분의 미완성 벽돌무덤뿐이다.

1호분은 판석을 이용하여 천정을 합장형[맞배형]으로 구축했으며, 구조는 4호분과 동일하다. 규모는 길이 215㎝, 너비 110㎝, 높이 120㎝이다. 3호분은 2호분의 남쪽에 인접해 있으며, 전곽(磚槨)의 일부를 축조하다 만 미완성분으로 보인다.

이 고분에 사용한 재료는 모두 평적용으로 2호분의 벽돌 형태와 같다. 길이모쌓기와 작은모쌓기를 한 벽돌들은 모두가 민무늬이며, 넓은 평면에는 모두 삿무늬[승석문(繩蓆文)]가 시문되어 있다. 6호분은 3호 벽돌무덤의 배수로 바로 위에 자리하며, 규모가 작은 구덩식 돌방무덤이다.

2018년 발굴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교촌리 3호 전실묘는 동북쪽의 ‘교촌봉’과 연결되는 마안형 능성의 남향사면 중단부에 입지한다. 묘광의 규모는 남북 길이 이 610㎝, 동서 너비 310㎝, 깊이 200㎝이며, 묘실의 규모는 남북 길이 340㎝, 동서 너비 190㎝, 잔존 깊이 160㎝이다. 교촌리 석축단 시설은 해발 95m의 ‘교촌봉’ 정상부에서 조사되었다. 석축단 시설의 규모는 동서 길이 840㎝, 남북 너비 730㎝, 석단의 높이 20~30㎝이며, 평면은 동서 방향이 약간 긴 방형의 구조이다.

[출토유물]

출토 유물로 보고된 유물은 없다. 다만, 벽돌무덤에 사용된 벽돌 가운데 연화문 등이 시문된 예가 일부 확인될 뿐이다. 2018년 발굴 조사에서도 문양전과 통일신라시대 골호만이 확인된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공주목조에 “향교의 서쪽에 무덤이 있는데, 백제 왕릉이라고 전한다.”라는 기록을 통하여 조선시대에도 왕릉의 존재가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교촌리 고분군은 현재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 도시의 권역이 확대되면서 조사 지역 인근 지역까지도 아파트 개발이 이루어지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교촌리 고분군무령왕릉이나 송산리 6호 벽돌무덤과 같은 벽돌무덤과 시목동 고분군에서 볼 수 있는 합장형 천정 형태의 돌방무덤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분군이 위치한 곳이 송산리 고분군과 지형상으로 연결될 정도로 가깝게 위치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보고에 의하면 무령왕릉에서 사용된 전돌의 형태가 확인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공주 지역 백제고분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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