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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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天瑞 |
영어음역 | Im Cheonseo |
이칭/별칭 | 종문(鍾文),문수(文洙)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 석우촌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문병학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초명은 문수(文洙), 본명은 종문(鍾文)이다. 천서(天瑞)는 자이다. 186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 석우촌에서 아버지 임석황(林錫璜)과 어머니 울산김씨(蔚山金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천서는 동학 농민 운동의 준비 단계부터 전봉준(全琫準)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고창에서 대접주로 활약하였고, 오하영(吳河泳)·오시영(吳時泳)·임형로(林亨老)와 함께 1,500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1894년 3월 고부군 백산에 본진을 설치할 때 두령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9월 재봉기 때는 임형로와 함께 5,0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고창에서 봉기하였다. 그러나 9월 재봉기가 실패로 끝나고 농민군이 모두 흩어지자, 11월에 단신으로 전라남도 함평군 장호리로 내려가 피신하던 중 법성포 수비대에 끌려갔다가 1895년 3월 30일 무장에서 일본군에게 총살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