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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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谷里 |
영어음역 | Un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호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곡리 명칭 유래와 관련해서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마을 주변이 기봉(旗峰)·용봉(龍峰)·필봉(筆峰) 등으로 둘러싸여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덮고 있다 하여 운곡(雲谷)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와 화시산[화시봉] 아래 골짜기이므로 운곡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1780년경 선산김씨(善山金氏)가 터를 잡아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高敞郡)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덕리(安德里)·신안리(新安里)·신기리(新基里)·정촌(丁村)의 일부가 병합되어 운곡리라 하고, 아산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대에 운곡댐 조성으로 마을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100~300m 내외의 산지이며, 관개 시설로 서쪽에는 운곡저수지와 동쪽에는 운곡제가 있다.
운곡리는 아산면 동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7.27㎢이며, 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총 2세대에 5명[남 3명, 여 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등록만 되어 있다. 경지 면적은 0.01㎢로 밭이 0.01㎢, 논은 없고, 임야 6.48㎢ 등으로 되어 있다. 운곡리 1개의 행정리 및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 유적으로 운곡서원(雲谷書院)은 1797년(정조 21)에 세웠다가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고, 1924년에 다시 세워졌다. 운곡서원에서부터 동쪽으로 550m 지점까지 고인돌 4기가 있는데, 두 번째 고인돌은 동양 최대의 것으로 무게만 300t 이상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상석으로 보이는 석재 1기가 더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더 많이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온 청계(淸溪) 강순(姜恂)이 거주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