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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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田里 |
영어음역 | Gojeon-ri |
이칭/별칭 | 고전포,고전호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휘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전리는 마을보다 주변에 있는 밭이 지대가 높아 고전(高田)이라 하였다. 고전포, 고전호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 목경파(牧卿波) 김영하(金永夏)의 6세손 김관승(金寬承)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 만돌(萬突), 고전, 주산(珠山), 두어(斗於)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전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송현(松峴) 앞에 알처럼 둥그렇게 생긴 난산(卵山)[일명 알미], 고전 남쪽에 소산(少山)이 솟아 있다. 난산 밑에 방아의 다리처럼 생긴 방아다리, 옥동(玉洞) 뒤에 옥수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고전 북쪽에 해마다 당산제를 지냈다는 당산뜽, 고전 동남쪽에 부체바우[일명 독바우]가 있는 부체뜽 등의 산등성이가 있다. 고전에서 떡적골[일명 독자골]로 넘어가는 알밋재, 떡적골에서 준지메[일명 진주메]로 넘어가는 넉굴재 등의 고개가 있다.
노두먹벌·윗벌뜸·일관내원안[일명 일관평] 등의 들이 펼쳐져 있고, 준지메 동북쪽에 겨울철에는 물오리가 찾아오는 오리방죽이라는 웅덩이가 있다. 떡적골에는 돌 틈에서 솟아나는 떡적골샘이 있는데 염전에서 일할 때 입던 옷은 이 물로 빨아야 때가 잘 져서 예전부터 빨래터로 유명하였다. 그 밖에 염막의 주인이 기와집에 살았다는 기와집터, 고전 위쪽이 되는 윗벌터, 일곱 개의 염막이 있던 일곱벌뜸터, 땅이 질어 노둣돌을 깔았다는 노두먹벌터, 준지메 앞에 준지멧벌터 등의 염막 터가 있다. 고전과 준지메 사이에 장승이 서 있던 장승배기가 있다.
고전리는 심원면의 서북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4.82㎢로 밭 0.42㎢, 논 0.76㎢이며, 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총 130세대에 253명[남 127명, 여 1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전리·진주리·예동리·염전리 4개의 행정리와 고전·진주[일명 준지메]·옥동·예동·염전(鹽田)·부등(阜嶝)[일명 불뜽, 부등도(阜嶝島)]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방죽안·송현·떡적골·호룡동(虎龍洞) 등의 마을도 있다.
고전에는 삼양사가 경영하는 삼양염전(三養鹽田)이 있다.진주는 옥동 남쪽 산 밑에 있는 마을로,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이 진주옥반형(珍珠玉盤形)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염전은 삼양염전 옆에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방죽안은 오리방죽 안쪽에 있어 붙인 이름이고, 송현은 고전 동북쪽 산 밑에 있는 작은 마을로 과거 소나무가 울창하여 붙인 이름이다. 떡적골은 부체뜽 남쪽에 외따로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부등은 염전 서쪽 갯가에 있는 마을로 해풍에 밀려 온 모래가 섬처럼 쌓여 있던 곳을 개간한 마을이다.
고전리에는 고창컨트리클럽이 있고, 고전리 고전 당산이 있다. 오른쪽에 군도 7호선이 지나고 왼쪽에 국도 77호선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