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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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後長 |
영어음역 | Huja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욱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자연 마을.
후장(後長)이 있는 장화동은 1450년경 당시 성균관 진사였던 돈화 정임(鄭任)이 벼슬을 그만두고 화산(花山)으로 내려와 살면서 마을 이름을 장화(張華)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장화(障化) 또는 꽃잔[華殘]이라고도 하였다. 마을 서쪽에 있는 화초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장화동이 커지면서 전장[전장화]과 후장[후장화]으로 나누어졌다.
후장이 위치한 장화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장·후장·가작을 병합하여 월촌면 장화리가 되었다. 1989년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하면서 김제시 월촌동에 편입되었고, 1998년 교동과 월촌동을 병합함에 따라 교동월촌동 관할 법정동인 장화동이 되었다. 장화동은 김제 관내에서 가장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후장은 장화동의 3개 마을 중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서쪽에 화초산이 있다. 마을에 있는 정구례 고가(鄭求禮古家)에는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장화리 쌀뒤주가 있다. 장화리 쌀뒤주는 한때 구례군수를 역임하였기 때문에 정구례로 더 잘 알려진 정준섭(鄭畯燮)이 1864년(고종 1)부터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다.
정준섭은 조부 때부터 전해 내려온 많은 토지를 소유한 토호(土豪)로서 매일같이 찾아오는 과객이나 식객이 수백 명에 이르자 작은 궤짝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안마당에 70가마 분량의 쌀이 들어가는 초대형 쌀뒤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크기는 높이 180㎝, 너비 210㎝로, 두께 3.3㎝의 널빤지 8개를 짜 맞추어 벽체를 구성하였고, 앞면 가운데의 폭 68㎝ 공간의 문을 만들었으며, 볏짚으로 지붕처럼 뚜껑을 만들어 씌웠다. 흉년이 들면 쌀뒤주에 보관된 쌀을 풀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