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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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胤績 |
영어음역 | Yi Yunjeok |
이칭/별칭 | 건백,숭례(崇禮)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삼조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건백(建伯), 호는 숭례(崇禮). 할아버지는 이돈(李墩)[1628~1702]으로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병자호란 이후 관료로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숭정처사로 불렸다. 아들은 이의조(李宜朝)이다. 이의조는 조정에 천거될 때 ‘영남 우도의 큰 유학자’라고 하였는데, 2책의 『의요보유(義要補遺)』, 『경의수차(經義隨箚)』를 비롯하여 가학(家學)으로 물려받았던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학문적인 연구 성과와 도암 이재(李縡)[1680~1746]의 예학을 바탕으로 완성한 해설서 『가례증해(家禮增解)』를 저술하였다. 집안의 대표적 인물로는 연성부원군 이말정(李末丁)[1395~1461],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이숙기(李淑琦)[1428~1489] 등이 있다.
이윤적(李胤績)[1703~1756]은 이재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웠으며, 평생 동안 예학을 공부하였다. 『주자가례』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관혼상제에 맞는 『가례증해』를 편찬하려고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유언에 따라 아들 이의조가 1792년(정조 16)에 완성하였다.
겸재 박성원(朴聖源)이 묘갈에서 숭례처사(崇禮處士)라고 추존하였다.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으며, 경학으로 천거되어 사헌부집의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