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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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遠翰 |
영어공식명칭 | Chang Wonhan |
이칭/별칭 | 만리(萬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인재 |
출생 시기/일시 | 164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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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42년![]() |
추모 시기/일시 | 1863년 - 철종, 장원한 효자 정문 하사 |
묘소|단소 | 장원한 묘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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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장원한 정려각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311[금대리 143]![]()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인동 |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장원한(張遠翰)[1645~1742]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자는 만리(萬里)이다. 아버지는 장득종(張得宗)이고, 부인은 여흥 민씨(驪興 閔氏)이다.
장원한이 12세 때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자 밤낮으로 울면서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도하였고, 변을 맛보아 가며 병세를 살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는 삼년상을 마칠 때까지 상복을 벗지 않았다.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는 매를 훈련시켜 매일 꿩 세 마리를 잡아 반찬으로 올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1년을 더 살게 하였다. 장원한 이후 장씨 집안에 여덟 효자가 났다고 전한다.
1741년(영조 17) 2품의 벼슬과 토지 1결을 하사받았으며, 호세와 부역을 면제받는 특권을 누렸다.
장원한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 있다.
장원한의 효행에 관한 소문이 조정에까지 들어가자 1863년(철종 14) 효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