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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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思峰地名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국제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9월 30일 - 「국사봉 지명 유래」 『동작구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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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국사봉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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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의 지명 유래담.
「국사봉 지명 유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상에 있는 산으로, ‘국사봉’(國思峰) 혹은 ‘국사봉(國師峰)’으로 혼용되어 불리고 있다.
「국사봉 지명 유래」는 1994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발행한 『동작구지』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2018년 발행된 『동작뉴스』 기사 등에 ‘국사봉(國思峰)’ 혹은 ‘국사봉(國師峰)’으로 불리는 자료 등이 남아 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상에 있는 산으로 ‘국사봉(國思峰)’ 혹은 ‘국사봉(國師峰)’으로 혼용되어 불리고 있다.
먼저 국사봉(國思峰)으로 불리는 이유는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이 산의 봉우리에 올라 동생인 세종(世宗)[1397~1450]과 나라를 걱정했다 해서 ‘생각 사(思)’를 붙여 ‘국사봉(國思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비록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준 뒤 대궐에서 쫓겨났지만 세종이 형인 양녕대군을 위하는 마음과 양녕대군이 세종을 위하는 마음 등 우애 깊은 형제의 얘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나오는 것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가 국사봉 아래 사자암을 지었기 때문에 무학대사를 국사로 보고 ‘국사봉(國師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일대에 남아 있는 무속신앙 등을 살펴 볼 때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국사당(國師堂) 혹은 성황당(城隍堂)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의 ‘국사봉(國師峰)’이라고 불렸을 개연성도 있다. 국사봉 일대는 신점, 신굿 등 오랫동안 무속신앙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1872년 편찬된 시흥현지에는 사자봉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봉우리에 사자암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