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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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命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우현 |
출생 시기/일시 | 1926년 1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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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채명신 월남 |
수학 시기/일시 | 1948년 4월 - 채명신 육군사관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65년 8월 - 채명신 주월사령관으로 참전 |
활동 시기/일시 | 1972년 6월 1일 - 채명신 전역 |
활동 시기/일시 | 1972년 - 채명신 주스웨덴 대사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73년 - 채명신 주그리스 대사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77년 - 채명신 주브라질 대사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2013년 11월 25일![]() |
출생지 | 채명신 출생지 - 황해도 곡산군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일반병사묘역 02-1-34489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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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군인 |
성별 | 남 |
본관 | 인천 |
대표 경력 | 사령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군인.
채명신(蔡命新)[1926~2013]은 대한민국 군인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다. 6·25전쟁에서는 ‘백골병단’이라 불렸던 유격부대를 이끌기도 했으며 베트남전쟁에서는 1965년 8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초대 주월한국군 사령관과 맹호부대장을 맡았다.
채명신의 본관은 인천이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서 관서흑우회 대표를 지냈던 채은국(蔡殷國)의 아들이다.
채명신은 1926년 황해도 곡산군에서 출생했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지내다가 1947년 월남했다.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에 입학했다. 졸업 후 소위로 임관했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 1950년 6·25전쟁 등에 참전했다. 6·25전쟁 중 ‘백골병단’이라 불리는 유격부대를 이끌고 후방교란을 펼쳐 전공을 올렸다. 6·25전쟁 후 소장까지 진급했다. 휴전 후 대령으로 진급해 제7사단 5연대장, 제3사단 참모장, 제20사단 60연대장 등으로 활동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 1965년 8월 베트남전쟁에 초대 주월한국군 사령관을 시작으로 1969년 4월까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5월 3일 귀국했다.
1972년 초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 선포에 반대하자,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고 6월 1일 제2군사령관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전역하였다. 이후에 1972년 주스웨덴 대사, 1973년 주그리스 대사, 1977년 주브라질 대사 등을 역임했다. 2013년 11월 25일 사망했다.
채명신의 저술로는 『사선(死線)을 넘고 넘어』와 『베트남전쟁과 나』가 있다.
“나를 파월 장병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일반병사묘역 02-1-34489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