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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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始興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웅호 |
제정 시기/일시 | 17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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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95년 - 시흥현에서 시흥군으로 승격 |
관할 지역 | 시흥현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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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부터 1895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설치된 조선 후기의 지방행정구역.
시흥현은 1795년에 기존의 금천현(衿川縣)을 고친 고을 이름으로, 1895년에 시흥군(始興郡)으로 승격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1795년(정조 19)은 정조의 부친 장헌세자와 모친 혜경궁 홍씨가 회갑인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조는 같은 해 윤 2월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華城)으로 행차하였다. 이에 앞서 화성 행차 때 하룻밤 묵는 행궁이 있는 금천을 옛 이름인 시흥으로 바꾸고 고을 수령의 격을 현감(縣監)에서 현령(縣令)으로 높였다. 이후 연례 행사로 진행되는 국왕의 화성 행차를 대비하여 행궁 관리를 원활히 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천현감을 승격시켜 현령으로 삼고, 고을 이름을 고쳐 시흥으로 하였는데 옛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정조실록(正祖實錄)』 42권, 정조 19년 윤2월 1일(계미)]
1795년(정조 19) 윤 2월 1일 금천을 옛 호칭인 시흥으로 바꾸고, 고을 수령의 격을 종6품의 현감에서 종5품의 현령으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금천현은 시흥현으로 바뀌었다. 같은 달 9일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으로 행차할 때 시흥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었으며, 같은 달 16일 한양으로 돌아올 때에도 이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하였다. 1797년(정조 21)에는 장헌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지키는 장용영(壯勇營) 외영(外營)의 군세를 강화하기 위해 시흥현과 과천현이 수원유수부 북쪽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 고을 군사의 소속을 총융청(摠戎廳)에서 장용영 외영으로 바꾸었다.
시흥현은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의 개편과 함께 시흥군으로 승격하였다.
금천현의 시흥현으로의 개칭은 수원유수부 설치와 더불어 정조의 화성 행차와 연관된 행정단위 변화의 역사적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