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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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致禮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민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41년 - 한치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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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99년 - 한치례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500년![]() |
현 소재지 | 한치례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 |
성격 | 신도비 |
양식 | 이수 방부형 |
관련 인물 | 한치례(韓致禮)|어세겸(魚世謙)|임사홍(任士洪) |
높이 | 87㎝[이수]|74㎝[비신]|128㎝[비좌] |
너비 | 34㎝[이수]|24㎝[비신]|85㎝[비좌] |
두께 | 54㎝[이수]|140㎝[비신]|69㎝[비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한치례의 신도비.
한치례(韓致禮)[1441~1499]는 좌의정 한확(韓確)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이조 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아버지는 세조(世祖)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으며, 누이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德宗)과 혼인하여 훗날 인수 대비(仁粹大妃)가 되었다. 큰 고모는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뽑혀 여비(麗妃)가 되었고, 작은 고모는 성조의 뒤를 이은 선종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과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 갔다. 부인은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의 딸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한치례 신도비는 한치례가 죽은 지 1년 뒤인 1500년(연산군 6)에 한치례의 장손인 한세창이 건립하였다. 한치례 묘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번지]에 있다.
이수형 비석으로 이수(螭首)와 비신(碑身)이 한 돌이다. 이수 방부형으로 이수는 거의 반원형이다. 이수에는 전면과 후면에 각각 쌍룡이 가운데의 여의주를 맞잡아 바라보며 다투는 형상이다. 여의주 위로는 불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이무기 주변에는 구름무늬를 장식하였다. 비좌(碑座) 윗면에는 복련, 전면에는 두 열로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초문을 새겨 넣었다. 규모는 이수 87㎝×34㎝×54㎝, 비신 74㎝×24㎝×140㎝, 비좌 128㎝×85㎝×69㎝이다.
전액은 ‘장간 한공 신도비 명(莊簡韓公神道碑銘)’이고, 비제는 ‘유명 조선국 순성좌리공신 보국숭록대부 영□녕□□□□□□□□□ 시 장간□공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純誠佐理功臣輔國崇祿大夫領□寧□□□□□□□□□諡莊簡□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한치례의 사촌형이자 당시 좌의정이었던 청성군(淸城君) 한치형(韓致亨)이 홍귀달(洪貴達)에게 부탁하여 지었다.
한치례 신도비는 2면 비로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일부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 전기 비석 양식을 잘 보여 주어 능묘 조각 연구 자료로도 매우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