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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마 동신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C020203
한자 - 洞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정의]

평지마 동신제

[정성은 그대로 절차는 간소하게]

평지마의 동신제는 음력 정월 14일 맞은편 산에 위치한 세 곳의 제당에서 제관 1명과 2명의 유사가 참석하여 제를 올렸다. 3명 중 한명은 제를 주관하는 제관, 그리고 장을 보는 사람, 마지막 심부름 하는 유사이다.

옛날에는 동제를 하면 깨끗한 사람 한다고 씨를 두들겨가지고 내림을 해서 신을 받아서 그 양반한테 지정하라고 하거든요. 세사람을 했어요. 한 집은 제관집이고, 두 사람은 심부름하고 장보는 그런 사람이예요. (제0근)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더 이상 3명의 제관 선출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당나무에 그 사실을 고하기로 결정하였다.

몇 년 전에 사람이 없이 마을에 어떻게 하느냐 이래가지고 우리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지요 당나무에 가가지고. ‘우리가 모실라고 하니까 사람이 없어가지고 기본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해서 두사람씩 음식 간단하게 해가지고’ 옛날에는 돼지를 한 마리씩 잡아가지고 동민 전체 모여서 갈라먹고 했는데 ‘음식 간단하게 해가지고 제사 모시듯이 하겠다’이렇게 말로만 그리 하고 있죠.(제0근)

‘당신님 우리가 정성을 다하지만 음식은 간단하게 그리고 제관도 한명만 가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모시는 정성은 변함이 없지만 줄어드는 인구와 노령화로 인해 모든 제의 절차를 이전같이 갖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당신님에게 사실을 고하고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먼저 하였다.

[산신과 천왕 그리고 골목천왕]

평지마의 제는 모두 세 곳에서 올린다. 평지마 맞은편 산사면에 위치한 제당은 산신과 천왕 그리고 골목천왕으로 불리운다. 산신과 천왕은 느티나무 형태이며, 마지막 골목천왕은 돌로 쌓은 감실이다.

제의는 음력 정월 14일 오후 3~4시 사이에 올린다. 과거에는 자정에 올렸지만 지금은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로 인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용이하지 않아 제의 시간을 해가 있는 낮 3~4시경으로 옮겼다. 참석 범위는 인근 배정과 윙계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석하였지만 현재는 배정 사람들 일부와 평지마에서는 한 가구만이 참석하고 있다. 고령화로 참석도 어렵지만 배정과 윙계 등의 인구는 대부분 외부인들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는다.

제의 음식은 과거 동민 전체가 모여 갈라 먹기 위해 돼지 한 마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밥과 국, 백짐, 고기, 포, 삼실과 등 간단하게 세 개의 상을 마련하여 제를 올린다. 산신당에 먼저 제를 올린 뒤 절을 올린 뒤 술을 바친다. 이후 천왕당에도 동일한 제물이지만 새것을 준비하여 똑같은 절차로 올린다. 마지막 골목천왕은 두 곳의 나무와는 달리 ‘ㄷ’자 형태의 돌로 만들어진 감실에 음식을 진설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음식이지만 새것을 준비하고 모든 제의 과정은 동일하다.

[대동회와 평지리치성계안]

동제를 올린 아침 마을 사람들은 제관의 집에서 인사를 하고 동회관으로 모인다. 지금은 정대1리 마을회관에서 6개 마을 함께 대동회를 하지만, 과거에는 각각 자연마을에서 별도의 대동회를 개최하였다. 평지마 역시 동제를 올린 뒤 동제에 대한 결산과 마을의 결산을 위하여 대동회를 개최하였다. 평지마에서는 일찍이 대동회와 함께 동제의 결산을 보고하며 이를 기록하였는데 ‘평지리 치성계안’이라고 한다. 평지리 치성계안은 오래 전부터 동제를 맡은 제관들이 계속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1972년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치성계안에는 그해 동제에 사용된 비용과 함께 품목 그리고 회비 등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참고 문헌]

평지리 마을, 「평지리치성계안」(1972년)

[정보 제공자]

제0근(남, 1931년, 달성군 가창면 정대1리 평지마 거주)

추0덕(여, 1935년,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평지마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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