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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986
한자 淸道金氏
영어공식명칭 CheongdoGim Clan|CheongdoGimssi
이칭/별칭 청도김씨 금산파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옥포읍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청도 - 경상북도 청도
세거|집성지 금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리
세거|집성지 외동 마을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 2리 외동 마을
세거|집성지 다리목 마을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 1리 다리목 마을
성씨 시조 김지대(金之岱)
입향 시조 김렬

[정의]

김지대를 시조로 하고, 김렬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청도김씨는 조선세조 즉위 후 현풍으로 낙향한 김렬이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달성군 유가읍 금리유곡 2리 외동 마을 일대, 그리고 옥포읍 교항 1리 다리목 마을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경주 김씨에서 분파한 청도김씨의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이다. 김지대는 1258년(고종 45) 몽고가 침입하자 공을 세워 청도군에 책봉되었고, 이후 후손들이 청도김씨의 시조로 받들고 있다. 청도김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확고하게 권력 기반을 다지게 된다. 세종 때 호조 판서를 역임한 김점과 그의 아들 김유손, 김의손, 김경손 등이 각각 절충장군과 예조 참판, 중위 사정을 역임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셋째 아들 김경손의 둘째 아들인 김욱은 양녕 대군의 사위가 되면서 왕가와 사돈지간이 되었다. 이후 김경손의 첫째 아들 김희의 후손들이 현풍 적산[현재 고령]으로 옮겨가면서 청도김씨 현풍파를 이루었고, 둘째 아들인 김한은 성주로 가서 청도김씨 성주파의 파시조가 되었다.

[입향 경위]

청도김씨는 조선단종이 폐위되면서 현풍으로 낙향하였으며, 청도김씨 금산파라 부르고 있다. 특히 달성군 유가읍 금리 입향조는 금산파 파시조인 김득경의 증손 김렬이다. 당시 김렬이 부인 현풍 곽씨의 고향인 현풍으로 들어오면서 마을의 입향조가 되었다. 또한 달성군 옥포읍 교항 1리 다리목 마을에도 청도김씨 집성촌이 있다. 입향조는 처사(處士) 창원공(昌元公)과 선전관(宣傳官) 유원공(有元公) 형제로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내에 낙교재(洛橋齋), 구목당(九睦堂) 등 청도김씨와 관련된 유적들이 있어 마을 내 청도김씨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청도김씨는 939명으로 확인되었다. 2009년에는 달성군 유가면[현 유가읍] 금 1리에 14가구, 금 2리에 5가구, 유곡 2리 외동 마을에 6가구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성군 옥포읍 교항 1리 다리목 마을은 1990년대 후반 총 360가구 중 120가구가 청도김씨로 마을 내 영향력이 상당하였으며, 현재도 그 세를 이어 나가고 있다.

[관련 유적]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1473번지에는 야헌(野軒) 김성로(金成魯)를 추모하기 위해 1900년대 초에 건립한 낙교재가 있으며, 옥포읍 교항 1리 다리목 마을에는 청도김씨의 사당인 구목당이 있다. 또한 달성군 유가읍 유곡 2리에는 효자 김처정(金處精)과 그의 손부인 김여택의 처 열부 재령 이씨를 기리는 재령 이씨 효열각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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