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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760
한자 李泌
영어공식명칭 Lee Phil
이칭/별칭 홍중(洪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1년연표보기 - 이필 출생
거주|이주지 하빈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부임|활동지 예산현 - 충청남도 예산군
묘소|단소 이필 묘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기곡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의
대표 관직 예산 현감

[정의]

조선 전기 전의 이씨달성 입향조.

[개설]

달성 지역의 전의 이씨(全義李氏)는 이필(李佖)[1521~?]이 경기도 부평에서 처음 하빈현(河濱縣)[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입향하면서 형성되었다. 이필의 아들과 손자들은 대구부와 그 주변 고을 사족들과 혼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빈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이필이 처음 정착하였던 하산리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번성하였는데, 특히 아들 이경두와 손자 이종문(李宗文), 증손자 이지영(李之英)·이지화(李之華) 형제를 거치면서 크게 일어났다. 이경두와 이종문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군공을 세웠는데, 이종문은 원종공신으로 녹훈되었으며 말년에는 하산리에 하목정(霞鶩亭)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이지영, 이지화 형제는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현달함으로써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후손들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여러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이필의 증손자 이지영의 후손은 지금의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동곡리, 기곡리에, 둘째 이지화의 후손은 현재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등지에 각각 세거하였다. 이지영, 이지화 형제의 이복 동생인 이지발(李之發)과 이지시(李之蒔)의 후손들은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 일대에서 터를 잡았다. 이필의 고손자인 전양군 이익필(李益馝)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자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과 토벌에 나서 공을 세움으로써 분무공신 3등이 되었으며, 사망 후에는 국가에서 불천위(不遷位)를 내려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이처럼 전의 이씨는 이필하빈현에 우거한 이래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오늘날 달성을 대표하는 가문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홍중(洪仲), 고려 개국 공신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후손으로 대대로 대관(大官)을 지냈다. 이필의 할아버지는 사복시 정 이세분(李世芬)이며, 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광원(李光元)이다. 아들은 병절교위 이경두(李慶斗)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공적으로 병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며느리는 선교랑 윤황(尹滉)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손자는 이종문이며, 손자 부인으로 지평 전경창(全慶昌)의 딸 옥산 전씨(玉山全氏)와 이분(李芬)의 딸 완산 이씨(完山李氏)가 있다.

[활동 사항]

이필은 예산 현감을 지냈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기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후손들이 이필을 추모하기 위하여 달성군 하빈면 기곡리에 이유재(履有齋)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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