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일본 유학생 독립운동 자금 조달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408
한자 日本 留學生 獨立運動 資金 早達 事件
이칭/별칭 이용로 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6월 - 이용로가 상해 임시 정부 수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향인 달성군 하빈면 하산동으로 귀향함
종결 시기/일시 1919년 6월 24일연표보기 - 이용로가 체포되어 검사국으로 송치됨
성격 독립운동 자금 모금 사건
관련 인물/단체 이용로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일본 유학생 이용로가 상해 임시 정부 수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으킨 운동.

[역사적 배경]

3·1 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 통치에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민족 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임시 정부의 수립이 추진되었다. 임시 정부 수립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였다. 이때 이용로는 임시 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경과]

달성군 출신의 일본 유학생 이용로3·1 운동 직후 도쿄[東京]에서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오환민(吳煥敏)과 함께 경상남도 합천 출신의 장인환(張仁煥)과 만나게 된다. 이용로는 오환민과 함께 장인환으로부터 임시 정부의 수립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듣고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귀국하였다. 이용로는 1919년 6월 무렵 귀국하여 고향인 달성군 하빈면 하산동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용로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 명의의 토지를 매각하려 하였다

[결과]

귀향한 이용로의 동향을 주의 깊게 감시하던 대구 헌병 분견대는 그가 상해의 임시 정부를 원조하기 위해 운동 자금을 조달하려 한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자신의 자산을 처분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에 따라 이용로는 대구 헌경 분견대에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24일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