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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친목회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405
한자 達城親睦會 運動
이칭/별칭 조선 국권 회복단 중앙 총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3년 1월연표보기 - 달성친목회 재건
종결 시기/일시 1915년 9월연표보기 - 달성친목회 강제 해산
발단 시기/일시 1908년 - 달성친목회 결성
발생|시작 장소 안일암 -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성격 비밀 결사 운동

[정의]

1910년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달성친목회 결사 운동.

[개설]

달성친목회는 1908년 대구에서 계몽운동 단체로 결성되었다가 한 일병합으로 활동이 중지된 것을 1913년에 독립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재건된 비밀결사였다. 대한광복회[대한광복단]와 함께 1910년대 국내 대표적 비밀결사이다.

[역사적 배경]

1908년 달성친목회는 교육 운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하는 계몽 운동 단체의 성격을 갖고 결성되었으나, 1910년 한 일 병합으로 활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관망하던 달성친목회 회원과 새로이 확보된 인사들은 1913년 정월대보름 안일암에서 시회를 가장하여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달성친목회를 재건하였다.

[경과]

달성친목회는 안일암 시회의 단군 영전 앞에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할 것을 결의하고, 형제의 의를 맺으며 서약하였다. 이로써 달성친목회는 계몽 운동에서 민족 독립운동을 위한 단체로 거듭났으며,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론에 입각해 조직을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 중반 달성친목회는 국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추구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태궁 상회를 운영하였다. 1915년 9월 달성 친목회는 일제 관헌으로부터 강제 해산 명을 받았다. 이후 활동이 잠정 중지되었다가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세 독립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국외 독립운동 세력을 국내 부호들에게 연결시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활동을 지원하였다.

[결과]

달성친목회는 1919년 3·1 운동 시기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제 관헌에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대구 지방 법원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달성친목회는 한 일 병합 이후 계몽 운동 단체에서 독립운동 단체로 전환하여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론을 전개하며 1910년대 민족 운동을 심화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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