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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662
한자 權達燮
영어공식명칭 Kwon Dalseo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권달섭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4년 3월 - 권달섭 경북중학교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61년 1월 - 권달섭 민주민족청년연맹경북연맹에 가입, 조직국장으로 활동
출생지 권달섭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지도보기
성격 사회활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민주민족청년연맹경북도연맹 조직국장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출신으로 4·19혁명 시기의 민주민족청년연맹 활동가.

[가계]

권달섭의 아버지는 경찰관 출신으로 시월항쟁 때 좌익에 의해 피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 사항]

권달섭은 1944년 3월 경북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48년 3월 5학년에 재학 중 동교 남로당 학생 프락치인 김상휘(金尙輝)의 제안을 받아 교장 조규성 배척운동을 벌이다 퇴학처분을 받았다. 1948년 12월 말 월북하였다. 1949년 3월 중순부터 3개월간 강동정치학원에서 대남공작 교육과정을 받았다. 그 뒤 대남 제7유격대 대원으로 월남하여 유격대 활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 강원도 서림소재 국군 호림부대에 포위되어 귀순하였다. 1949년 7월 무렵 육군독립보국대대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하던 중 1951년 6월에 해병대에 편입해 복무하였다. 1952월 1월 무렵 의병제대한 후 가사에 종사하였다. 4·19혁명 이후 1961년 1월에 민주민족청년연맹경북연맹에 가입하고 조직국장으로 활동하였다. 민주민족청년연맹경북연맹의 회원수는 약 1,000명 정도였다. 민주민족청년연맹경북연맹은 민족자주와 민족혁명 노선을 표방하며, 주요 통일방안으로 남북협상론을 주장하였다. 민주민족청년연맹경북연맹은 한미경제협정반대투쟁과 이대 악법반대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통일민주청년연맹, 민족건양회 등과 함께 통일을 목표하는 민족자주통일협의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5·16군사정변이 발생한 뒤 소위 민주민족청년동맹 사건으로 군사혁명재판소에 회부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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