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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촌동 문화유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507
한자 芳村洞 文化柳氏 世居地
영어공식명칭 Munhwa Ryu’s Village, Buncheon-dong
이칭/별칭 방촌동 문화유씨 세거지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윤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800년연표보기 - 방촌동 문화유씨 세거지 문화유씨 입향
본관 문화 -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입향지 문화유씨 입향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문화유씨 집성지 -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유차달
입향 시조 미상

[정의]

유차달을 시조로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에 살고 있는 문화유씨 세거지.

[개설]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의 고려시대 이름은 격양동(擊壤洞)이었다. 격양동은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기에는 방촌천 좌우로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유광촌이라 불렸다. 한편, 문화유씨(文化柳氏)들이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초례봉 아래 동내동에서 집성촌을 이뤄 살기 시작하면서, 유씨들이 사는 동네라고 해서 유광촌(柳光村)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당시 격양리를 병합하여 방촌동이라 부르고, 달성군 해안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57년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연원]

문화유씨 시조는 고려 삼한 공신으로 알려진 유차달(柳車達)로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 지금 황해도 은율군]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5대조인 유색(柳穡)이 신라 헌덕왕 때 유주 구월산(九月山)에 은거한 이래로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다가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서 세거해 왔다. 6세손인 문간공(文簡公) 유공권(柳公權)은 중시조라고 할 수 있는데, 고려 명종조에 등제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8대손 유경(柳璥)은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정권을 무너뜨려 왕정을 복구하는 데 일조해 위사공신(衛社功臣) 1등에 봉해졌으며,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받았다. 이에 후손들이 유주 즉 문화를 관향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문화유씨는 약 230년 전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초례봉 아래 자연 부락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황]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세거한 문화유씨는 곤산군파 귀정공(龜亭公) 유사온(柳思溫)의 후손들이었다. 현재는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방촌동은 집성촌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한다.

[관련 유적]

방촌동 문화유씨 세거지에서 문화를 본관으로 쓰는 인물로는 유여량, 유사온, 유시번, 유요신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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