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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70
한자 李源萬
이칭/별칭 오운(五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 9월 7일연표보기 - 이원만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1년 - 이원만 니혼대학 중퇴
활동 시기/일시 1957년 4월 - 이원만 한국나일론주식회사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이원만 수출산업촉진위원회 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이원만 제7대 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이원만 대통령 유공표창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이원만 코오롱그룹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 이원만 금탑산업훈장 추서
몰년 시기/일시 1994년 2월 14일연표보기 - 이원만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우각리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학교|수학지 흥해공립보통학교 - 경상북도
학교|수학지 니혼대학 - 일본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일본 - 일본
묘소 금릉공원묘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산199-1
성격 기업인|정치인
성별 남성
본관 여주
대표 경력 코오롱그룹 회장|제6대 및 제7대 국회의원

[정의]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기업인.

[개설]

이원만(李源萬)[1904~1994]은 1904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 아버지 이석정(李錫政)과 어머니 이사봉(李泗峰) 사이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다. 호는 오운(五雲), 본관은 여주이며, 이언적의 15대손이다. 영일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사립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이원만은 흥해공립보통학교[현 흥해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하고 졸업하고, 1930년 경북 영일군 산림기수보로 종사하였다. 일본과 한국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정치인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원만은 1933년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1935년에 광고 모자 전문 업체인 아사히공예주식회사(朝工藝株式會社)를 설립하고, 1937년에 아사히피복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41년 니혼대학을 중퇴하였다. 이원만은 동생 이원천에게 아사히피복주식회사를 경영하게 하고,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대구에서 직물공장을 인수하여 경북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5·10선거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아사히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51년 삼경물산을 설립하였다.

이원만은 1957년 4월 코오롱의 전신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나일론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나일론 원사공장인 한국나일론 대구공장을 준공하였다. 이원만은 1976년 코오롱그룹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원만은 기업 활동을 벌이면서 경제 관련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이원만은 정부 수립 후 1949년 재일한국인경제동우회 창립에 참여하고 부회장이 되었고, 1956년 재일한국인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원만은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만큼 한일회담에 관심이 많았고, 주일대표부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1960년 6월 재일본한국인경제연합회의 자격으로 과도정부에 경제 부흥 시책을 건의하였다. 첫째, 원료를 수입하여 보세 지역에서 가공한 다음 수출하는 경제 전략, 둘째 향후 일본에 대한 식량 수출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여 화학약품, 청과류 밭을 이용한 수출 산업 진흥, 관광사업 확장, 일본인 기술자의 이용 등을 강조하였다. 이원만은 1963년 수출산업촉진위원회 위원장, 한국 수출산업공단지 창립위원장, 국제연합 한국협회 부회장, 동대구역 건설 추진위원장, 대한속기사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원만은 1994년 2월 14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이원만은 대구에서 우익 노선에서 정치활동을 벌였다. 한국민주당 경북도당 재정부장이 되었고, 1946년 대구에서 독립촉성경북국민회의 결성대회에 참석하였다. 이원만은 1948년 5·10선거 때 경북 영일 갑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민주국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맡았으며, 1960년 7·29선거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경상북도 제2부의 참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61년 11월 13일 신민당 경북도당 주비위원 대회에 가담하고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원만은 1963년 구정치인 추가 구제 대상에 포함되어, 제6대 국회의원 선거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대구 동구에 출마하여 내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저술 및 작품]

이원만의 저술로는 『나의 정경 50년』[코오롱, 1977]이 있다.

[묘소]

이원만의 묘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금릉공원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원만은 1967년 한국수출공단의 준공식에서 대통령 유공표창을 받고, 1994년 금탑산업훈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1.22 내용 변경 [묘소] 경북 금릉군 금릉공원묘지 → 경상북도 김천시 금릉공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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