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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61
한자 達城儒賢 崇慕碑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서구 당산로 403[이현동 48-144]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2008년 9월연표보기 - 달성유현 숭모비 건립
현 소재지 서구문화회관 앞 - 대구광역시 서구 당산로 403[이현동 48-144]지도보기
성격 숭모비
관련 인물 주신언|채응린|정사철|곽재겸|서사원|채선각|정광천|손처눌|채몽연|류시번|도성유|박수춘|정수|도여유|서시립|서사선|박종우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230㎝|70㎝|3㎝
소유자 달현숭모회(達賢崇慕會)
관리자 달현숭모회(達賢崇慕會)

[정의]

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에 있는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17인의 숭모비.

[개설]

달성유현 숭모비(達城儒賢 崇慕碑)는 조선 전기 명종 때부터 조선 후기 인조 때에 이르는 기간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열일곱 명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 열일곱 명은 달성유현숭모회(達城儒賢崇慕會)가 인천채씨 집안에 전하여 오는 「덕행록(德行錄)」과 오졸재(五拙齋) 손단(孫湍)의 「유현록(儒賢錄)」, 박종우의 문집에 수록된 「달성십현(達城十賢)」 등을 중심으로 편찬한 『달성유현행록(達城儒賢行錄)』을 바탕으로 선정하였다. 그렇게 뽑힌 송재(松齋) 주신언(朱愼言), 송담(松譚) 채응린(蔡應麟), 임하(林下) 정사철(鄭篩哲), 괴헌(槐軒) 곽재겸(廓再謙),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동호(東湖) 채선각(蔡先覺),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 양직당(養直堂) 도성유(都聖兪),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 양졸재(養拙齋) 정수(鄭錘),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 동고(東皐) 서사선(徐思選), 도곡(陶谷) 박종우(朴宗祐)를 일컬어 ‘달성유현’으로 칭하였다.

[건립 경위]

대구광역시 지역 유학자 17인의 후손들이 달성유현숭모회를 결성하여 2008년 9월에 서구문화회관 옆에 건립하였다.

[위치]

달성유현 숭모비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 48-144 서구문화회관 옆에 있다.

[형태]

달성유현 숭모비는 높이 230㎝, 너비 70㎝, 두께 3㎝의 자연석에 비문이 새겨져 있다. 주위에는 돌로 만든 작은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금석문]

달성유현 숭모비에는 ‘달성유현숭모비(達城儒賢崇慕碑)’라는 비제가 한자로 적혀 있고, 측면 좌우에는 달성유현숭모비 건립 추친위원회의 명단과 비문을 쓴 이의 이름이 각각 적혀 있다. 비석 뒷면의 비문에는 달성유현 17인에 대한 소개와 숭모의 뜻을 기록하였는데, 한글로 쓰고 한자는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흘흘비덕(屹屹琵德)의 정기(精氣) 어린 아담한 옛 배고개[梨峴] 나루터의 징심정려(澄心精慮)한 객회(客懷)가 서린 고즈넉한 자리에 자운(紫雲)이 총롱(葱蘢)한 녹지대(綠地帶) 동산 언저리, 천고길상지(千古吉祥地)에 거룩한 달성유현(達城儒賢)의 효제의용(孝悌義勇)이 숭앙(崇仰)됨으로써 영남부재(嶺南覆載)에 명성이 자자(藉藉)하던 제현(諸賢) 들이 저 정민궁비(貞珉穹碑) 속에 해고석란(海枯石爛)토록 벽락(碧落)의 태백(太白)처럼 萬古光明이 길이 멸(滅)하지 않으리!/ 저 유유(悠悠)히 흐르는 낙동강(洛東江)이 가야신라(伽倻新羅)의 은사물(恩賜物)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강물이 태백산(太白山) 황지(潢池)에서 발원(發源), 영남의 대동맥이 되어 남해로 흘러드는 그 유역 군현(郡縣) 면면에 탁락(卓犖)한 인재가 빈출(彬出)하였다. 용재총화(慵齋叢話)엔 조선인재반재영남(朝鮮人才半在嶺南)이란 말이 적중되었고, 택리지(擇里志)엔 경상도는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 상징 하였다./ 서라벌(徐羅伐) 정기(精氣)를 이어 받아 여기 민족의 얼이 서린 달벌(達伐) 옛동산에 새로운 아침을 열고 조선(朝鮮)의 숭유벽불(崇儒闢佛)의 국시(國是) 아래 신유학(新儒學)인 정주학(程朱學)이 발달되어 퇴계(退溪)의 이발기수학설(理發氣隨學說)과 율곡(栗谷)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양대산맥을 이루어, 영남은 퇴계학설을 원용(援用)하는 학자가 많았다./ 달불(達弗)은 영남의 웅부(雄府)로써 일찍이 추로무이유풍(鄒魯武夷遺風)을 타고 세칭 달성십현(達城十賢)이 탁출(踔出)하였다. 십현(十賢)의 명칭은 순천박씨(順天朴氏) 도곡연보(陶谷年譜)와 인천채씨(仁川蔡氏) 택고문서(宅古文書)에서 보이며 達城儒賢行錄엔 송재(松齋) 주신언(朱愼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동호(東湖) 채선각(蔡先覺),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 양직당(養直堂) 도성유(都聖俞),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 양졸재(養拙齋) 정수(鄭錘),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 동고(東皐) 서사선(徐思選), 도곡(陶谷) 박종우(朴宗祐) 등 십칠현(十七賢)이 등재(登載)되어 당대(當代)에 덕고망중(德高望重)하고 병이수정(秉彝守正)하며 함경미도(含經味道)하고 돈신명의(惇信明義)하여 추로(鄒魯)인양 웅도(雄道)에 유현(儒賢)이 빈출(彬出)하고 왕리(王鯉) 맹순(孟筍)과 學問 연필(椽筆)로써 그 의덕(懿德)이 고을에 모범이 되어 후윤(後胤)들에게 민족정기(民族正氣)를 순순(淳淳)히 덕화훈도(德化薰陶)하였고 유구(悠久)한 역사속에 문화(文化)창달(暢達)과 겨레의 삶을 보존(保存)하고 영위(營爲)하기위해 분연(奮然)히 창의(倡義), 임란(壬亂)의 선봉(先鋒)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전화(戰禍)로 피폐(疲弊)한 여민(黎民)을 구휼(救恤)한 의적(義蹟)은 徂謝 후에도 사림에서 서원에 외루(外壘)처럼 봉향하고 유훈(遺訓)을 연련(連連)이 새겨 숭모(崇慕)를 더하니 순효지경(純孝至敬)이 슬기롭고 그 청풍여택(淸風餘澤)이 무궁(無窮)하리니!/ 도(道)는 천겁(千劫)을 지나도 불고(不枯)하고 덕(德)은 만세(萬世)를 뻗쳐도 이웃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에 지난 경축년(1997) 봄에 달현숭모회(達賢崇慕會) 결성, 이듬해 제현(諸賢)의 행장(行狀)을 모은 달성유현록(達城儒賢錄)을 철궐(剟劂)에 부쳐 경진년(2000) 8월에 성책(成冊)하여 천강행의(天綱行誼)를 본받고자 하였다./ 불일전(不日前)에 달현숭모회 회장 서정호(徐鉦昊) 족(族)이 불녕(不佞)에게 비명(碑銘)을 청(請)하므로 소식불(謏識不文)이나 색책(塞責)한다. 용가(龍歌)의 근심지목(根深之木)과 원원지목(源遠之水)와 같이 우리 달현은 창공의 태영처럼 길이 빛나리라. 시조(時調) 2수(二首)로써 명왈(銘曰), 비덕산(琵德山) 위 푸른 달빛 천추만대(千秋萬代) 비추는데 거룩한 달현사도(達賢士道) 저 빛 속에 어렸네라! 언제나 낙금청풍(洛琴淸風) 속에 길이길이 빛나리라! 서라벌 정기 받아 이현(梨峴)의 이 동산에 영글어, 달형상달(君子上達) 유덕(遺德)어린 자운(紫雲) 자욱 조촐한데, 진실로 산고수장(山高水長)인양 만고불멸(萬古不滅) 그 서광(瑞光)이여!”

[현황]

달성유현 숭모비는 높이 230㎝, 너비 70㎝, 두께 3㎝ 자연석에 새겨 건립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달성유현 숭모비는 조선 전기 명종 때부터 조선 후기 인조 때에 이르는 기간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여러 유학자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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