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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29
한자 大邱 旭水洞 遺蹟五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길 37[욱수동 8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5월 14일~6월 22일 - 대구 욱수동 유적5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욱수동 유적5 -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길 37[욱수동 81] 일원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욱수동 유적5(大邱 旭水洞 遺蹟五)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다. 덕원중·고등학교 이전 부지에 대하여 2001년 5월 14일부터 6월 22일까지 영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삼국시대 집자리, 고상건물지, 수혈 유구 16기, 도랑[溝], 기둥구멍 120개가 확인되었고, 굽다리접시[高杯], 뚜껑[蓋], 항아리[壺] 등의 토기류와 토제품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욱수동 유적5가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성암산[472m], 안산[470m] 등의 산지와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선상지의 선정과 선앙부에 해당된다. 고산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칭되고 있다. 대구 욱수동 유적5는 고산선상지의 선정 부분에 해당하며, 동쪽으로는 구릉 사면부가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망월지가 조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대구 욱수동 생활유적, 동쪽 구릉에는 중산동 고분군Ⅱ가 있다.

[형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장방형을 띠며, 소토와 목탄이 다량 확인된 점에서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겹입술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二重口緣口脣刻目孔列文土器] 조각과 가락바퀴[紡錘車], 반달돌칼[半月形石刀], 갈판[碾石]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집자리는 방형을 띠며, 고상건물지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구조이다. 수혈유구는 대부분 부정형인데 주거용, 작업용 시설, 폐기장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랑유구 중 1호와 2호는 확인된 규모가 길이 125m 내외, 너비 3.5~3.8m로 대형이다. 토층 조사와 출토 유물에 대한 분석으로 통하여 도랑 1호가 4세기 말에서 5세기 전반에 축조되어 사용되다가 폐기되고 도랑 2호가 축조되어 7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랑은 욱수천의 방향과 동일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수로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호 도랑에서는 다량의 강돌이 확인되는데, 수로의 보나 제방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와 수혈에서는 굽다리접시, 굽다리사발[臺附碗], 손잡이잔[把手附杯],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긴목항아리[長頸壺], 시루, 흙구슬[土球], 손칼[刀子], 쇠화살촉[鐵鏃]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도랑에서는 집자리와 수혈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을 포함하여 말모양토기[馬形土器]를 비롯하여 굽다리접시와 같은 제기(祭器)로 추정되는 토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욱수동 유적5는 발굴 조사 완료 후 덕원중·고등학교가 조성되었고, 주변 고산선상지 선정 부분은 망월지와 근린생활시설, 주차장 등이 조성되면서 유적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망월지 북쪽에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 부분에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 유적의 일부가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의와 평가]

대구 욱수동 유적5는 고산선상지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 유적 중에서 가장 산지와 가까운 선정 부분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삼국시대 수로로 추정되는 도랑의 경우 매우 큰 규모로 확인되었고, 제의용으로 보이는 말모양토기가 출토된 점과 300년에 가까이 사용되었던 점에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 유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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