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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26
한자 大邱 新梅洞 時至地區 生活遺蹟三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로 6[신매동 602-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7월 1일~1998년 4월 15일 -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로 6[신매동 602-1]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

[개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大邱新梅洞時至地區生活遺蹟三)은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으로서, 시지택지개발사업지구시지고등학교 건립 부지에 대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7년 7월 1일부터 1998년 4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수혈유구와 삼국시대 수혈유구, 우물, 기둥구멍, 도랑[溝], 도로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 항아리[赤色磨硏土器壺]와 삼국시대 굽다리접시[高杯], 항아리[壺], 사발[碗] 등의 토기류, 흙구슬[土球], 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제품, 홈돌[凹石], 돌구슬[石球] 등의 석기류, 손칼[刀子], 쇠화살촉[鐵鏃], 쇠도끼[鐵斧], 쇠낫[鐵鎌]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이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성암산[472m], 안산[470m]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선상지의 선앙과 선단부에 해당된다. 고산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칭되고 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도 대구 고산 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의 위치는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이며, 주변으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다. 동쪽 욱수천 건너편 저구릉에는 삼국시대 중산동 고분군과 욱수동·옥산동 토기요지가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2-1번지에 해당한다.

[형태]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에서는 청동기시대 수혈유구는 1기만 확인되었는데, 내부에 소형의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이 가득 채워져 있으며, 적색마연토기가 거꾸로 놓인 상태로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수혈유구는 45기, 우물 4기, 도랑7기, 도로 1기, 기둥구멍 1,420개가 확인되었다. 성격 불명의 유구도 다수 있지만, 주거용·작업용·폐기장 등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주거용 수혈은 평면 형태가 정형하며, 바닥면이 고르고, 부뚜막이나 화덕 시설이 있다. 작업용 수혈은 평면 형태가 일정하지 않지만 내부에 화덕이 있거나 다량의 소토(燒土)나 숯이 확인되고, 송풍관 등의 특별한 유물이 출토된다. 폐기장은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토기 조각과 대소의 강돌과 깬돌이 무질서하게 채워져 있다. 우물은 원형과 타원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로 축조되었다. 의례 행위에 의한 유물이 우물 내에서 출토되었다. 도로유구는 황갈색사질점토와 잔자갈을 사용하여 잘 다진 형태로 확인되었다. 남북 방향이며, 규모는 길이 17m, 외부 너비 270㎝, 내부 너비 180㎝ 규모이다. 기둥구멍은 상당히 많은 수가 조사되었으나 일정한 형태를 갖춘 무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항아리[赤色磨硏土器壺]를 비롯하여 삼국시대 굽다리접시[高杯], 뚜껑[蓋], 사발[碗], 손잡이달린사발[把手附碗], 잔[杯], 항아리[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긴목항아리[長頸壺],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겹입술긴목항아리[附加口緣長頸壺], 손잡이항아리[把手附壺], 단지[甕], 바리[鉢], 컵형토기[cup形土器], 그릇받침[器臺], 병, 시루 등의 토기류와 가락바퀴[紡錘車], 흙구슬[土球], 흙인형[土偶], 그물추[漁網錘] 등의 토제품, 돌구슬[石球], 홈돌[凹石], 숫돌[砥石] 등의 석제품, 쇠화살촉[鐵鏃], 손칼[刀子], 쇠낫[鐵鎌], 쇠도끼[鐵斧], 살포형철기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은 발굴 조사 완료 후 시지고등학교가 건립되어 원형을 찾을 수 없다. 주변 충적지 대부분도 택지개발 후 아파트,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 도로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동쪽 신매공원 부분은 원형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에서는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중점적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는 반면 청동기시대 유구는 단 1기만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생활유구는 삼국시대에 비하여 밀집도가 상당히 떨어지며, 드문드문 산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생활유적 중 수혈유구와 기둥구멍이 압도적으로 많이 확인된 반면 집자리의 수가 적은 점과 다양한 형태의 수혈유구와 무질서하게 산재되어 있는 기둥구멍의 성격을 밝히는 것은 향후 연구과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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