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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55
한자 金二植
영어공식명칭 Kim Yisik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5년 12월 8일연표보기 - 김이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김이식 조선연극동맹 서기국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9년 5월 16일 - 김이식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묘소 납북 및 월북 인사 묘역 - 북한 평양직할시
성격 극작가
성별 남성
본관 분성(盆城)
대표 경력 조선연극동맹 중앙 서기국장

[정의]

대구 출신의 극작가.

[개설]

김이식(金二植)[1915~?]은 1915년 12월 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거주하며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가계]

김이식의 본관은 분성(盆城)이다. 아버지는 김영우(金永祐)이고, 형은 김일식(金一植)이다.

[활동 사항]

김이식은 광복 후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1945년 12월에 결성된 조선연극동맹에서 활동하였지만 1947년 8월 이후 미군정의 탄압과 구성원들의 월북으로 인하여 활동이 중단되었다. 김이식은 1948년 7월부터 다시 연극 활동 재개를 모색하였다.

김이식이 조선연극동맹의 중앙 서기국장을 맡고 있던 1949년 5월 16일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는 조선연극동맹 활동에 대하여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이때 조선연극동맹의 핵심 간부인 김이식을 비롯한 6명은 구속되었고, 나머지 4명은 불구속 처리되었다. 김이식은 1949년 6월 20일 안한복(安漢福)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김이식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월북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이식의 작품으로는 「황혼의 마을」, 「서화(鼠火)」 등이 있다.

[묘소]

김이식의 묘소는 북한 평양직할시에 조성된 납북 및 월북 인사 묘역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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