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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자청년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51
한자 大邱女子靑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3년 10월연표보기 - 대구여자청년회 조직
최초 설립지 명신여학교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안로20길 8[범물동 1293]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조양회관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지도보기
성격 여성운동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한 여성 단체.

[개설]

대구여자청년회(大邱女子靑年會)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대구에서 조직되었으며, 여성들의 교육 운동, 직업교육, 권익 활동, 사회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여자청년회는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교육 계몽과 사회주의적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여자청년회는 1923년 10월 17일 대구의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조직되었다. 창립총회는 김귀조(金貴祚)의 독창으로 개회되었으며, 임시 회장과 서기를 선출하고 회가(會歌) 독창, 취지 설명, 규칙 통과의 절차를 거쳐 고문 선거를 진행하고 폐회하였다. ‘대구여자청년회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위원은 서복주(徐福珠), 김귀조, 이금조(李今祚), 조영수(趙永守), 정칠성(丁七星)[1897~1958], 이춘수(李春壽), 이원임(李元任) 등 일곱 명이었다. 대구여자청년회정칠성이춘수는 일본 유학 중이었으며, 대구 최초의 사상 단체인 상미회(尙微會)의 회원이었다. 조영수는 1921년에 설립된 대구부인상회의 이사로 활동한 여성이었다.

대구여자청년회는 여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명신여학교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하여 ‘편물강습회(毛絲講習會)’를 개최하고, 1925년에는 대구편물전람회(大邱毛絲展覽會)를 열기도 하였다. 대구여자청년회는 1924년 6월 대구에서 처음으로 대구부인강좌(大邱婦人講座)를 개최하였다. 1924년 11월에는 효성여학교에서 여학생 퇴학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학교 운영진과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추진하였다. 1925년 3월 ‘국제부인데이’ 기념일을 맞아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대구여자청년회는 다양한 후원 활동을 펼쳤다. 1923년 3월 말 간도(間島)의 동흥중학(東興中學)을 후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대구후원회에 참여하였고, 1924년 7월 대구에서 발생한 수해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구의 사회운동 단체와 연합하여 ‘대구수해응급구제단’을 조직하였다. 또 이재민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대구여자청년회는 여성 단체의 확대와 강화를 위하여서도 활동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새로 창립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에 가맹하였다. 대구여자청년회정칠성이춘수는 1924년 5월에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 단체로 결성된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종래의 계몽적 여성 교육론을 비판하며 사회주의적 여성해방운동을 펼쳤다. 정칠성은 1925년 3월 경상북도 도 단위 사상 단체인 사합동맹(四合同盟)의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일본에서 이춘수와 함께 여성 사상 단체 삼월회(三月會)를 조직하였다. 1926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대구여자청년회와 조선여성동우회에서 여성운동을 펼쳤다. 대구여자청년회는 여성운동의 전국적 통일 기관으로 근우회(槿友會)가 창립되자 근우회 대구지회의 설립을 주도하여 1928년 2월 25일 대구의 조양회관(朝陽會館)에서 ‘근우회 대구지회 설립대회’를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여자청년회가 창립되기 이전 대구에는 종교 부속의 여자 청년 단체만 있었기에 대구여자청년회는 명실공히 여성이 주체가 되는 대구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 단체였다. 대구여자청년회는 대구와 전국 차원에서 여성운동의 발전과 대구 지역 사회운동의 고양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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