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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자양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008
한자 大丘庚子量案
이칭/별칭 『대구부조암방양안(大丘府租岩坊庚子量案)』,『대구부조암면양안(大丘府租岩面庚子量案)』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20년연표보기 - 『대구경자양안』 작성
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아사미문고[淺見文庫] -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
성격 양안
저자 경상좌도 균전사 심수현(沈壽賢)|대구판관 이우신(李雨臣)

[정의]

1720년에 조사한 대구부 조암면의 토지 대장.

[개설]

양안(量案)은 조선시대 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토지를 측량하여 만든 토지 대장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실시한 양전 사업으로 작성한 양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719년 9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 균전사(均田使)를 파견하여 3남 지방의 개량(改量)이 이루어졌다. 이때 만들어진 것을 ‘경자양안’이라 한다. 이 가운데 경상도 6개 고을과 전라도 8개 고을의 것만 남아 있는데, 경상도의 양안은 대부분 ‘경자개량양안(庚子改量田案)’, 전라도는 ‘기해양전도행장(己亥量田導行帳)’으로 표기되어 있다. 『대구경자양안』은 내제가 ‘강희 61년 2월 일 경상좌도 대구부 조암면 경자개량양전’으로 1720년(숙종 46)에 조사한 대구부 조암방[조암면]의 토지 대장이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아사미문고[淺見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대구경자양안』의 저자는 경상좌도 균전사 심수현(沈壽賢), 대구판관 이우신(李雨臣)이다.

[편찬/간행 경위]

1720년에 조사한 경자양전(庚子量田)의 결과를 정리한 토지 대장이다. 경상도의 경우 균전사인 심수현이 경상좌도, 경상감사 오명항(吳命恒)이 경상우도의 양전 책임자였다.

[형태/서지]

지면은 판심에는 ‘대구경자양안(大丘庚子量案)’, 그 맞은편이 ‘대구(大丘)’이며, 곽과 행을 목판으로 파서 찍은 종이이다.

[구성/내용]

지면 상단 여백에 조암, 조암원[조암들], 석천원[한샘들], 범삼원[범삼제에 딸린 들]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양안은 앞뒤로 몇 장이 낙장되었기 때문에 조암방[조암면]의 전체 토지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이를 제외하면 전답이 268결 8부 2속이며, 진전(陳田)[묵정밭]은 9결 32부 8속으로 3.5%에 불과하다. 양안에 기재된 기주(起主) 795명 중 271명이 조암면민이며, 주변 면민이 247명, 미상이 277명이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인 단양우씨는 대략 호당 1~2결의 토지와 수 명의 노비를 소유, 사역시키며 농사를 지었다. 대체로 벼농사였지만, 목화를 재배하여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직접 베를 짜기도 하였다. 또한 흉년이 들면 환곡을 얻어 쓰고 제대로 갚지 못하여 관가에 들어가 벌을 받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경자양안』은 조선 후기 토지 소유와 농업 경영 및 신분제의 동요와 해체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가치가 큰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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