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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손처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18
한자 與孫處訥
영어공식명칭 A letter to Son Cheo-nul
이칭/별칭 「여손기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0년 - 서사원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5년 - 서사원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43년 - 「여손처눌」 저자 서사원의 『낙재선생문집』 간행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사원본가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성격 서간류|서
작가 서사원

[정의]

조선 후기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손처눌에게 보내는 편지.

[개설]

「여손처눌(與孫處訥)」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 곽재겸(郭再謙), 손처눌(孫處訥)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 『낙재선생문집(樂齋先生文集)』이 있다.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의 문인이다. 장현광, 서사원, 곽재겸, 유요신(柳堯臣)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대구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연경서원, 선사재 등에서 강학하였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1784년 간행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구성]

「여손처눌」『낙재집』에 「여손기도」라는 제목으로 5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첫 번째 편지는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의 완성을 알리며 인쇄를 향교에서 맡아 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편지이다.

두 번째 편지는 와병 중에 보내 준 편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는 편지이다.

세 번째 편지는 손처눌이 보내 준 편지와 화암(畵巖) 시를 받은 것에 대한 답장이다.

네 번째 편지는 1613년 쓴 편지로 손처눌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손처눌의 독서 소식에 먼저 『주자절요(朱子節要)』를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여 주고 있다.

다섯 번째 편지는 매화 필 때 만나기로 한 손처눌의 방문이 늦어지자 어서 방문하여 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이다.

[특징]

「여손기도」는 ‘안부-겸사(謙辭)-본론’으로 편지가 구성되어 있다. 손처눌서사원이 주고 받은 편지에는 겸손의 말을 나타내는 겸사가 편지 형식의 일부분으로 구성되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의의와 평가]

「여손기도」는 대구 지역 유학의 2세대였던 서사원손처눌의 교유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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