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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강좌열읍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315
한자 檄江左列邑文
영어공식명칭 Gyeok Gangjwayeol Eupmoon
이칭/별칭 강좌의 여러 고을에 보내는 격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달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0년 - 「격강좌열읍문」 서사원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5년 - 「격강좌열읍문」 서사원 사망
배경 지역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신당동 1000-2]지도보기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배경 지역 이강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사원 본가 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성격 잡저|격문
작가 서사원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의병장 서사원임진왜란 시기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

[개설]

「격강좌열읍문(檄江左列邑文)」은 풀이하면 ‘강좌의 여러 고을에 보내는 격문’이다.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경상북도와 대구 지역 의병들의 의분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다수의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이다. 저자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곽재겸(郭再謙)[1547~1615], 손처눌(孫處訥)[1553~1634]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서사원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이강서원에도 배향되어 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구성]

「격강좌열읍문」은 왜적의 칩입으로 나라 전체가 전쟁에 휩싸인 위기 상황임을 말하며, 나라의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하여서는 의병의 분기와 협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격강좌열읍문」의 일부분이다. 의병 지원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상략]

만일 사사로운 이해에 빠져 오히려 달아나 숨기를 생각하거나,

신민(臣民)의 직분에 어두워 공격하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직 전철(前轍)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며,

후공(後功)이 효과 없음에도 태연한 것이다.

이날 배반하는 무리들은 왜적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여기에서 난역(亂逆)하는 무리들은 법으로 죽여야 마땅하도다.

모름지기 의병의 초집(招集)에 따르고,

모두 왕사(王師)의 모임에 달려가자!

강좌의 여러 군현에서는 많은 이웃을 인도하여 병사를 일으키고,

낙서의 여러 주목에서는 이웃 고을에 효유하여 병졸을 모으자!

사안(謝安)이 환충(桓沖)의 군사를 물리치지 않았을 때에는 많을수록 좋았으며,

손빈(孫臏)이 방연(龐涓)의 무리를 막았을 때에는 위풍당당하게 깨끗이 정벌하였도다.

[하략]

[특징]

「격강좌열읍문」은 풍부한 고사(故事)와 용사(用事)의 사용으로 글의 이해도와 표현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격강좌열읍문」은 조선의 임진왜란사(壬辰倭亂史)에서 의병장들의 분투와 의기를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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