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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510
한자 棣華堂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9[산격동 91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9년 - 체화당 남계정사와 달성 서씨 문중 문중 건물을 통합하여 체화당으로 중건
현 소재지 체화당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9[산격동 913]지도보기
원소재지 남계정사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9[산격동 913]
성격 재실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달성서씨 현감공파 문중
관리자 달성서씨 현감공파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재실.

[개설]

체화당(棣華堂)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서사진의 첫째 아들 서신(徐愼)[1585~1641]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증직(贈職)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을 받았다. 둘째 아들 서율(徐慄)[1606~1687] 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셋째 아들 서업(徐𢢜)[1612~1676]도 손처눌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대구 지역의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위치]

체화당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913에 있다. 연암산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어서 연암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달성서씨의 집성촌이다. 달성서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 용담재(龍潭齋)일신재(一新齋) 등이 있었기 때문에 서당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변천]

체화당이 있는 곳에는 원래 300년 정도 내력이 있는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서율의 남계정사(南溪精舍) 건물이 있었다. 1959년에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남계정사를 통합하여 새롭게 ‘체화당’이라는 이름을 붙여 중건하였다.

[형태]

체화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화악문(花萼門)’이라는 솟을대문이 있다.

[현황]

체화당달성서씨의 재실로서 달성서씨 문중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체화당은 16세기~17세기에 달성서씨 문중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음을 보여 주는 건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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