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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섬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631
한자 東信纖維
영어공식명칭 Dongshin Textile Co.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0년대 초 - 남선제뉴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이후 - 남선제뉴에서 동신섬유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7년 - 동신섬유 무역 회사 동신양행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동신섬유 부도
최초 설립지 남선제뉴 - 대구광역시 중구
주소 변경 이력 동신섬유 - 대구광역시 중구
성격 섬유 기업
설립자 여상원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자수 직물 제조업체.

[개설]

동신섬유(東信纖維)는 1904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서 태어난 여상원(呂相源)이 설립한 자수 직물 전문 제조 회사이다. 여상원은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특과를 졸업한 후 사업을 위하여 타지를 전전하다가 1940년대 초 일본인과 함께 섬유 회사 남선제뉴를 설립하였는데, 해방 후 남선제뉴를 동신섬유로 개칭하였다.

[변천]

동신섬유를 설립한 여상원은 경상남도 의령에서 대구로 진출한 이병철(李秉喆)[1910~1987]과 인연을 맺고 오랫동안 사업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였다. 여상원은 1947년 조선양조(朝鮮釀造) 취체역(取締役)[예전에 주식회사의 이사를 이르던 말], 1953년 제일제당(第一製糖) 취체역, 1954년 제일모직(第一毛織) 초대 임원을 맡았으며, 해방 후 이병철과 함께 친목 단체 을유회(乙酉會)를 만들기도 하였다.

해방 후 여상원은 남선제뉴를 동신섬유로 개칭하고 군납과 민간 판매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동신섬유의 성장을 기반으로 1948년에는 연사를 생산하였으며, 1957년에는 무역 업체인 동신양행을 설립하여 국내에서 최초로 선풍기를 미군에 납품하였다. 1960년 동신섬유는 기계 자수 시대를 개막하였으나 1965년 화재로 동신양행이 전소되면서 자금난에 봉착하였고, 결국 1968년 동신섬유가 부도났다. 은행 관리, 경매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유족의 손에 넘겨진 동신섬유는 1992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동신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결국 동신산업도 폐업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신섬유는 해방 후 군화 끈과 운동화 끈을 생산하여 군납과 민간 판매로 사세를 확장하였다. 1960년에는 10야드[약 9m]짜리 이탈리아산 자수기 여섯 대를 도입하면서 기계 자수 시대를 개막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신섬유는 국내 최초로 자수기를 도입하여 자수 직물 공업화의 효시를 이룬 선도 업체이다. 동신섬유를 창업한 여상원은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면서 대구상공회의소회관 건립, 대구은행 설립 등을 통하여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대구일보』를 창간하는 등 언론 문화 창달에도 앞장섰다. 15년 동안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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