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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54
한자 片東鉉
영어공식명칭 Pyeon Donghy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연표보기 - 편동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1년 - 일본 메이지대학 상과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13년 - 일본 메이지대학 상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8년 - 편동현 백산상회에 투자
출생지 반곡리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
학교|수학지 메이지대학교 - 일본 도쿄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재건 달성친목회 회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편동현(片東鉉)[1886-?]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편동현은 일본으로 유학하여 아이치현[愛知県]의 나고야중학교[名古屋中學校]를 졸업하였고, 도쿄[東京] 게이오[慶應]의숙에서 2년간 보통학을 배웠다. 1911년 메이지[明治]대학 상과에 입학하여 1913년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서상일(徐相日)·박상진(朴尙鎭)·최준(崔浚) 등과 교유하며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고 포항과 대구를 오가며 거주하였다.

편동현서상일이 경영하던 태궁상회(太弓商會)에 현미 매매 명목으로 1만 6600원을 맡겼으며, 안희제(安熙濟)가 설립한 부산의 백산상회(白山商會)에도 투자 명목으로 1,250원의 약속어음을 건넸다. 1919년 정진영의 밀고로 재건 달성친목회 사건이 일어났을 때 편동현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고 가택수색을 받았다. 편동현은 1922년 6월 서울 장교동에 있는 동아강습소에 10만 원을 내놓아 중등학교 수준의 학교로 만들고자 도모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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