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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37
한자 崔應白
영어공식명칭 Choi Eungbae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2월 17일 - 최응백 금연상채회 평의원 선임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민족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금연상채회 평의원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할동한 민족운동가.

[개설]

최응백(崔應白)[?~?]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 문회(文會)는 특별총회를 열어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하였다. 1907년 2월 17일 광문사 사장이자 대동광문회 부회장이던 김광제(金光濟),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대동광문회장 박해령(朴海齡) 등을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조직으로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와 대구민의소(大邱民議所)가 설립될 때 최응백김재덕(金在德)·장재철(張相轍)·도성호(都性浩)·이병두(李柄斗)·이종희(李宗熙)·박광욱(朴光郁)과 함께 금연상채회 평의원에 선임되었다.

금연상채회수창사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하였고, 2월 21일 대구민의소 주최로 서문 밖 북후정에서 국채보상을 위한 군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가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리면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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