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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914
한자 李鍾植
영어공식명칭 Lee Jongsik
이칭/별칭 이임용(李任用),이화용(李化用)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1년 6월 24일연표보기 - 이종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7일 - 이종식 혜성단 결성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19일 - 이종식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0월 9일 - 이종식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 언도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이종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부산 - 부산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혜성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종식(李鍾植)[1891~1975]은 1891년 6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곡물상을 운영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임용(李任用)·이화용(李化用)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종식은 1919년 4월 17일 김수길(金壽吉)·이영식(李永植)·이종헌(李鍾憲)·이기명(李基明)·이수건(李壽鍵)·이영옥(李榮玉)계성학교 학생들 및 이명건(李命健)·최재화(崔載華)와 함께 독립운동 방법을 전환하기로 결의한 뒤 비밀결사 혜성단을 결성하였다. 이종식은 1919년 4월 17일 혜성단이 결성되기 전까지는 주로 격문 작성, 격문 배포, 철시 시위 안내 등을 담당하였다. 1919년 4월 2일 이영식 등과 함께 「협박문」 작성, 4월 6일 「동정표시 경고문」 제2호를 작성 및 등사하여 허성도와 함께 대구 각처에 배포했다.

이종식을 비롯한 혜성단원들은 4월 18일 「근고아동포(謹告我同胞)」, 4월 27일 「경아동포(警我同胞)」, 5월 7일 「경고관공리동포(警告官公吏同胞)」 등을 배포하였으며, 민족 자산가들에게는 독립운동 자금 헌금을 호소하였다. 상인들에게는 폐점 철시 및 일본인과의 거래 중지, 노동자들에게는 파업을 통한 독립운동 참가를 촉구하였다. 또한 대구경찰서장과 친일 인사들에게 암살 협박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1919년 5월 14일 김수길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혜성단의 실체가 드러나 이종식도 단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7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협박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종식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0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1심보다 형량이 늘어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종식은 만기 출소 후 1927년 부산에 있던 조선방직공장에서 근무하며 중락회(衆藥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노동자들의 민족의식을 높이고 동맹파업 등을 주도하였다. 이종식은 1975년 10월 1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종식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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