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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875
한자 李素香
영어공식명칭 Lee Sohyang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이소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1월 7일 - 이소향 국악방송 출연
몰년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이소향 사망
출생지 포항 - 경상북도 포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국악인
성별 여성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국악인.

[개설]

이소향(李素香)[1905~1989]은 1905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세습무 집안의 아버지 이하중[화랑이]과 어머니 이씨 무녀 사이 2남 3녀 중 셋째[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 경주기생조합에서 강태홍 명인에게 가야금산조 및 병창을 배웠다. 함흥의 반룡권번에 가서 여러 해 동안 박경원, 정용운, 김계선 등으로부터 가야금산조 및 병창, 단소 등 가무악 전반을 습득하여 서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조선권번에 적을 두고 활동하며 정남희, 오태석 등과 교류하였으며, 조선성악연구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오케음반 등 고음반에 다수의 소리를 남겼다.

[활동 사항]

이소향은 1920년대 후반에 한남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고, 조선음악협회와 조선음률협회,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다양한 무대에서 장기인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으로 단가와 「춘향가」, 「심청가」 등의 장기 대목을 하였다. 창극 「춘향전」[월매], 「토끼타령」[자라모], 「숙영낭자전」[홍씨 부인] 등에서는 중년 여성 역을 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소향은 1927년 11월 7일 국악방송에 출연하여 가야금 병창을 한 이래 1941년 9월 25일 조금옥과 함께 남도 가요를 부를 때까지 118회 출연하여 167곡을 연주하였다. 가야금산조는 33회 연주하고, 가야금병창으로 「대장부」 등 단가 22회, 「춘향가」의 ‘몽중가’와 「심청가」의 ‘범피중류’ 등 80회를 하였다. 이소향은 단소에도 능하여 국악방송에 출연하여 여러 차례 단소 연주를 하였다. 그리고 유성기 음반에 다양한 소리를 남겼는데 콜럼비아레코드의 단가 「조어환주」와 「춘향가」의 ‘박석티’ 등 현재 92면이 확인된다.

이소향은 단가 「호접몽」과 「죽장망혜」에 뛰어났으며, 「춘향가」의 ‘몽중가’와 ‘사랑가’, 「심청가」의 ‘범피중류’, 「흥보가」의 ‘중타령’과 ‘제비노정기’, 그리고 「적벽가」의 ‘조자룡 활 쏘는데’에 뛰어났다. 경상도 어조의 청아한 음성으로 꾸미지 않고 불러 듣기 편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는 평을 받았다.

이소향은 1989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일제강점기에 이소향이 취입한 음반은 콜럼비아레코드의 단가 「조어환주」와 「춘향가」 중 ‘박석티’가 있고, 빅타레코드의 단가 「호접몽」과 「청춘원」, 오케레코드의 「춘향가」 중 ‘몽중가’와 태평레코드의 단가 ‘편시춘’과 「흥보가」 중 ‘제비가’ 등이 있다. 그리고 오케레코드와 빅타레코드에 박록주, 오태석, 정남희의 소리에 장구 반주를 한 음반 39면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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