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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833
한자 李根重
영어공식명칭 Lee Geunju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2월 17일 - 이근중 금연상채회 결성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이근중 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활동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민족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금연상채회 평의원|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개설]

이근중(李根重)[?~?]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1907년 대구에서 광문사(廣文社)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가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1907년 2월 17일 이근중광문사 사장이자 대동광문회 부회장이던 김광제(金光濟),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대동광문회장 박해령(朴海齡)을 비롯한 회원 김병순(金炳淳)·장상철(長相轍)·강신규(姜信圭)·심정섭(沈廷燮)·김우근(金遇根)·서병오(徐丙五)·윤하선(尹夏璿)·정재덕(鄭在悳)·이종정(李鍾楨)·길영수(吉永洙)·이우열(李遇烈)·정규옥(鄭圭鈺)·추교정(秋敎廷) 등과 함께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 설립을 주도하였다. 또한 대구 북후정(北堠亭)에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여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를 공표하고 국채 보상에 필요한 모금 활동을 결의하였다. 이후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가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리면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근중은 1908년 교남교육회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는 학교 설립과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대구와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방조직인 지회를 설립하고 권유위원을 파견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근중강영주(姜永周)·김광제(金光濟)·김우근(金遇根) 등 35명과 함께 교남교육회 대구지회를 조직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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