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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69
한자 安潛
영어공식명칭 An Ja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안잠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안잠 대구 교남학교 중퇴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안잠 메리야쓰공업협회 검사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11월 - 안잠 민족통일경북연맹[경북민족통일연맹] 선전부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2년 1월 9일 - 안잠 경북민족통일연맹 활동으로 징역 5년 선고
출생지 도평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
학교|수학지 교남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통일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민족통일경북연맹 선전부장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개설]

안잠(安潛)[1906~?]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태어났다. 1924년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를 중퇴하고,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평화통일운동을 벌였다. 남북학생회담을 지지하고 성원을 보내며 자주적 남북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안잠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대구에서 메리야쓰공업협회의 검사원이 된 뒤 편직(編織)공업조합 상무이사로 근무하며 주로 섬유업계에 종사하였다.

안잠은 1960년 11월 민족통일경북연맹[경북민족통일연맹]에 가입하여 선전부장의 중요 직책을 수행하였다. 민족통일경북연맹은 경북시국대책위원을 확대 개편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

안잠은 1961년 2월 25일 서울 천도교 회당에서 열린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대회에 민족통일경북연맹을 대표한 대의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대회가 열린 천도교 회당 내부 단상에는 ‘뭉치자 민족 주체세력’, ‘배격하자 외세 의존 세력’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안잠은 1961년 3월 1일 달성공원에서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주평화통일을 추구하기 위한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에서는 남북 교륙, 평화통일이 제기되었다. 대회 후 참가자들과 함께 현수막과 차량을 앞세우고 달성공원을 나와 북성로, 중앙통을 거쳐 반월당까지 “통일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와 선전물을 뿌리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1961년 4월 남북학생회담의 개최를 지지하는 결의문 작성에 참여하였다. 결의문에는 “가자 북으로, 남으로, 판문점으로, 조국 현실의 지상 과제인 남북통일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정의에 불타는 남북 학생들은 과감히 나섰다. 조국 통일의 선봉으로 떠나려는 젊은 사자들의 외침을 듣자. 그리고 마음껏 성원하자.”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5·16군사정변이 발생한 뒤 경북민족통일연맹 건으로 군사혁명재판소에 넘겨져 1962년 1월 9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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