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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19
한자 金丙旭
영어공식명칭 Kim Byeonguk
이칭/별칭 서원박(徐原博)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 5월 28일연표보기 - 김병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0년 12월 1일 - 김병욱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무우원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43년 6월 - 김병욱 일제 경찰에게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44년 6월 16일 - 김병욱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 언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김병욱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몰년 시기/일시 1993년 7월 16일연표보기 - 김병욱 사망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학교|수학지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무우원 경제부장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병욱(金丙旭)[1920~1993]은 1920년 5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무우원(無憂園)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서원박(徐原博)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병욱은 1940년 6월 특설강습과 동기생 조형길(趙亨吉)·현영만(玄泳晩)과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기로 뜻을 같이하였다. 이후 이형수(李亨洙)·배환규(裵煥圭)·박찬억(朴讚億)·유성준(兪性濬) 등을 포섭하여 940년 12월 1일 당시 대봉동에 있던 이형수의 집에서 비밀결사 무우원을 결성하였다.

무우원은 폭력적인 투쟁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인 힘을 길러 독립을 달성하고,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허구성 폭로와 지원병·공출·징용 등의 강제 동원 거부를 당면 투쟁 지침으로 정하였다. 이를 위해 불교를 믿고 술과 담배를 금하며 조직원끼리는 친목을 두텁게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무우원은 기관지 『무우원』을 발행하였으며, 조직의 약칭으로 ‘M’을 사용하였다. 총칙과 세칙에 따르면 총책임자인 집행위원장을 두고 그 밑에 총무부·경제부·과학부·선전부·종교부·문예부·후생부의 7개 부서를 두었다. 조형길이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었고, 김병욱은 경제부장을 맡았다.

김병욱은 12월 26일 달성군 성서면 면사무소에서 한글로 된 무우원 취지와 규약을 몰래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무우원 조직원들은 저단금(貯丹金)이라는 자금을 마련하였고, 이를 전달받은 김병욱은 소 여덟 마리를 사서 달성군 하빈면의 농가에 입식시킬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43년 1월 3일 일본을 방문한 김병욱강증룡(姜曾龍)의 숙소에서 조형길·최수원(崔壽源) 등과 회합하여 국내 책임자를 맡기로 하고 향후 사업 계획을 협의하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김병욱은 1943년 6월 무렵 무우원의 활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소하였다. 김병욱은 1993년 7월 1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병욱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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