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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653
한자 朴是春
영어공식명칭 Park Sichun
이칭/별칭 박순동(朴順東)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성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 박시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박시춘 「멀리 떨어져」, 「희망의 노래」로 데뷔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박시춘 「혈서지원」 작곡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박시춘 「비 내리는 고모령」 작곡
활동 시기/일시 1947년 5월 - 박시춘 JODK 전속 악단 지휘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박시춘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박시춘 한국가요작가 동지회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박시춘 문화훈장 보관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박시춘 송축대전 개최
몰년 시기/일시 1996년 6월 30일연표보기 - 박시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3년 - 박시춘 음악회 개최
출생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작곡가
성별 남성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작곡가.

[활동 사항]

박시춘(朴是春)[1913~1996]은 1913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박순동(朴順東)이다. 11세에 축음기를 접한 뒤 음악과 더욱 가까워졌으며, 1935년에 「멀리 떨어져」, 「희망의 노래」로 데뷔하였다. 1936년 「애수의 소야곡」, 1939년에는 「감격시대」, 「비단장사왕서방」을 발표하였다.

박시춘은 1943년에 조선 징병제의 실시를 기념하는 「혈서지원」을 작곡하였다. 이후 박시춘은 1947년에 「비 내리는 고모령」을 작곡하였는데, 「비 내리는 고모령」의 배경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호동아가 작사하였으며 현인이 부른 트로트곡이다. 박시춘한국전쟁으로 피난 당시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에 적을 두고서 활동하였다.

박시춘은 1947년 5월에 현재의 KBS인 JODK 전속 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하였으며 1963년에는 한국연예협회의 초대 이사장 및 한국가요작가 동지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1991년에는 ‘박시춘 송축대전’이 열렸다.

박시춘은 1996년 6월 30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시춘은 대중가요 3,000여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시춘이 작곡한 대중가요 중에서는 특히 대구 지역의 지명을 제목으로 한 「비 내리는 고모령」이 유명하다.

「비 내리는 고모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나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 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감빡이는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쓰인 하소 적어 가면서/ 오늘 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상훈과 추모]

박시춘은 1982년에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최초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수상하였다. 박시춘의 사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2013년에 ‘박시춘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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