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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548
한자 金貴任
영어공식명칭 Kim Kwii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1년 9월 23일연표보기 - 김귀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8년 4월 - 김귀임 경성여자상업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월 - 김귀임 제2차 서울 연합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월 30일 - 김귀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송치
활동 시기/일시 1930년 2월 10일 - 김귀임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
출생지 남성정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성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경성여자상업학교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여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귀임(金貴任)[1911~?]은 1911년 9월 23일 대구부 남성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태어났다.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일어난 제2차 서울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가계]

김귀임의 아버지는 김경옥(金敬玉)이고, 어머니는 이갑영(李甲英)이다.

[활동 사항]

김귀임은 1928년 3월 대구 사립 복명보통학교를 졸업하한 뒤 4월에 경성여자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은 전국적 민족운동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에 1930년 1월 14일 김귀임은 북촌에 있던 동창생 송계월(宋桂月)의 집에서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성여자상업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이른바 제2차 서울 연합 시위를 계획하였다. 당시 계획한 내용은 1월 15일 9시 30분을 기하여 시위 행렬을 갖추어 종로로 나와 남대문 방면으로 행진할 것, 체포되어도 다른 사람의 성명을 밝히지 않을 것, 경찰서에 유치될 때에는 당연히 단식할 것 등이었다.

1930년 1월 15일 등교한 김귀임은 송계월·김수남(金壽南)과 함께 일반 학생들에게 만세 시위 계획을 전파하였다. 오전 10시경 실천(實踐)여학교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다가오자 경성여자상업학교 학생들도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학교 측의 만류로 학생들은 교실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1월 15일은 경성여자상업학교의 시험일이었는데, 김귀임을 비롯한 경성여자상업학교 3학년 학생들은 백지 답안을 제출하며 저항하였다.

다음 날인 1월 16일 등교한 김귀임은 송계월·김수남 등과 만세 시위를 재개하기로 결의하고 학생들을 독려하였다. 이에 10시 30분 무렵 2학년 교실에서 “대한 독립 만세”가 선창되었고, 다른 학생들도 호응하며 교정으로 나가려 하였지만 일제 경찰에게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귀임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월 30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2월 10일 송계월 등 25명과 함께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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