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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480
한자 郭東英
영어공식명칭 Kwak Dong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곽동영 ㄱ당 입당
활동 시기/일시 1928년 7월 24일 - 곽동영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사국에 송치
활동 시기/일시 1928년 8월 2일 - 곽동영 대구지방법원에서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
출생지 가태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ㄱ당 당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곽동영(郭東榮)[?~?]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ㄱ당에 입당하여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28년 5월경 조선인 청년들을 광둥군관학교[廣東軍官學校]에 유학시켜 독립운동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고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대구 달성공원에서 항일 비밀결사 ㄱ당이 결성되었다. 곽동영은 6월에 ㄱ당에 입당하여 주로 대구부와 달성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6월 11일 노차용(盧且用)과 함께 달성군 해안면 둔산동의 부호 김교식(金敎式)의 집에 들어가 권총으로 위협하며 잡지 발행 비용 명목으로 5,000원의 약속어음을 요구하였다. 김교식이 숙부가 인감을 휴대한 채 대구 여행을 갔다며 어음 발행을 미루자 곽동영노차용은 김교식의 집에서 밤을 지새웠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권총으로 위협하며 약속 이행을 강요한 뒤 대구로 돌아왔다.

곽동영·노차용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이 김교식을 불러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6월 22일부터 관련자 검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ㄱ당 조직이 드러나 곽동영을 비롯한 조직원들이 모두 검거되었다. 곽동영은 1928년 7월 24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사국에 송치되었지만 1928년 8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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