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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72
한자 鄭賜湖
영어공식명칭 Jung Saho
이칭/별칭 정만호(鄭萬戶),몽여(夢與),화곡(禾谷),충민(忠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3년연표보기 - 정사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7년 - 정사호 별시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85년 - 정사호 호조좌랑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96년 - 정사호 사복시정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정사호 안동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03년 - 정사호 황해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07년 - 정사호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10년 - 정사호 한성부우윤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14년 - 정사호 한성판윤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정사호 형조판서 역임
몰년 시기/일시 1616년연표보기 - 정사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62년 - 정사호 충민이라는 시호를 받음
부임|활동지 고산현 - 전라북도 완주군
부임|활동지 금성현 - 강원도 김화군
부임|활동지 안동부 - 경상북도 안동시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묘소|단소 정사호 묘소 - 경기도 양주시 이담면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광주(光州)
대표 관직 경상도관찰사|대사헌|대사간|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정사호(鄭賜湖)[1553~1616]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초명은 정만호(鄭萬戶)이고, 자(字)는 몽여(夢與), 호는 화곡(禾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순인(鄭純仁)이고, 할아버지는 정경(鄭褧)이다. 아버지는 장령 정이주(鄭以周)이며, 어머니는 부사과 정응서(鄭應瑞)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채무외(蔡無畏)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지중추부사 유필영(俞必英)의 딸 창원유씨(昌原俞氏)이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사위는 홍처후(洪處厚)이다. 동생은 정명호(鄭明湖)와 정운호(鄭雲湖)이다.

[활동 사항]

정사호는 1553년(명종 8)에 태어났다. 1577년(선조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1578년 승정원 주서로 벼슬길에 올랐다. 1585년 호조좌랑을 역임하였고, 이후 충청도 고산과 강원도 금성현의 현령을 지냈다. 1596년 사복시정, 1597년 안동부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호조참판, 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1603년에는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석담서원(石潭書院)을 중수하기도 하였다. 1605년 남원부사를 거쳐 1607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정사호는 약 7개월간 경상도관찰사로 있었지만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강학소인 선사재(仙査齋)[이강서원(伊江書院)의 전신]를 방문하는 등 대구 지역 유학 진흥에 기여하였다.

정사호는 1608년 조정으로 복귀하여 대사헌·형조참판·대사간을 역임하였고, 1610년(광해 2)에는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1612년 평안도관찰사, 1614년 한성판윤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지냈고, 1615년에는 형조판서에 올랐다. 1616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사호는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1564~1635],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등과 교유하며 『화곡집(禾谷集)』 4권 2책을 남겼다.

[묘소]

정사호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이담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사호는 1762년(영조 38)에 충민(忠敏)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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