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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李溆]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43
한자 李溆
영어공식명칭 Lee Seo
이칭/별칭 계호(季浩),부계(鄜溪),이한(李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28년 2월 16일연표보기 - 이서[李溆]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76년 7월 - 이서[李溆] 대구판관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78년 7월 - 이서[李溆] 대구판관 이임
몰년 시기/일시 1794년 3월 18일연표보기 - 이서[李溆] 사망
출생지 한성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한성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덕수(德水)
대표 관직 대구판관|돈녕부도정

[정의]

조선 후기 대구판관을 역임한 문관.

[가계]

이서(李溆)[1728~1794]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계호(季浩), 호는 부계(鄜溪)이다. 어릴 적 이름은 이한(李澣)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 이광하(李光夏)이고, 할아버지는 상주목사 이집(李㙫)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주진(李周鎭)이고, 어머니는 우의정 민진원(閔鎭遠)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활동 사항]

이서는 1728년(영조 4) 2월 16일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776년(정조 즉위년) 7월 대구판관으로 부임하였다. 대구는 지대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신천(新川)이 범람하여 향교(鄕校)와 대구부(大邱府) 관아가 물에 잠겼다. 이서는 부임한 후 신천의 제방을 막아 대구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방지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비석을 세워 기렸다. 이서의 공로를 기리는 비석에는 ‘이공제(李公堤)’라고 새겨져 있다. 즉, 이공(李公)이 쌓은 제방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중국 송(宋)나라 소식(蘇軾)이 항주태수로 서호(西湖)를 수리하였는데, 후인들이 제방을 ‘소공제(蘇公堤)’라고 부른 데서 연유하였다.

이서는 1778년 7월 대구판관을 이임하고 남원부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광주·나주·황주·여주 목사를 거쳐 돈녕부도정을 역임하였다. 1794년 3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82-2 이서공원 안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인 이공제비각(李公堤碑閣)이 있다. 비각 안에는 이서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 2기와 대구판관이었던 이범선(李範善)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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