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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31
한자 李奎報
영어공식명칭 Lee Kyubo
이칭/별칭 춘경(春卿),백운거사(白雲居士),문순(文順)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168년연표보기 - 이규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190년 - 이규보 진사 급제
활동 시기/일시 1202년 - 이규보 경주 민란 진압군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207년 - 이규보 권보직한림에 발탁
활동 시기/일시 1237년 - 이규보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로 퇴임
몰년 시기/일시 1241년연표보기 - 이규보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3월 1일 - 이규보 묘소 인천광역시기념물 제15호로 지정
출생지 여주 - 경기도 여주시
거주|이주지 개경 - 북한 개성특별시
부임|활동지 팔공산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묘소|단소 이규보 묘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여주(驪州)
대표 관직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정의]

고려 후기 대구의 팔공산을 찾아와 제문을 지은 문관.

[가계]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어릴 적 이름은 이인저(李仁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은백(李殷伯)이고, 할아버지는 이화(李和)이다. 아버지는 호부시랑을 지낸 이윤수(李允綏)이고, 아들은 이관(李灌)·이함(李涵)이다.

[활동 사항]

이규보는 1168년(의종 22)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에서 태어났다. 1190년(명종 20)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무신란(武臣亂) 이후 혼란하던 고려의 정치 상황 속에서 관직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개성 천마산에 들어가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며 지내다가 1193년 개성에 돌아와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당시 문란한 정치와 혼란한 사회를 보고 크게 각성하여 「동명왕편(東明王篇)」,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등을 지었다.

1202년(신종 5) 12월, 동경(東京)[현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병마녹사 겸 수제원(兵馬錄事兼修製員)으로 종군하였다. 농민 반란군은 경주와 청도 운문산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규보가 소속된 진압 부대는 팔공산 꼭대기에 올라가 산신에게 반란군 진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때 이규보팔공산에서 올리는 제사의 제문 세 편을 지었다. 「제공산대왕문(祭公山大王文)」과 「헌마공산대왕문(獻馬公山大王文)」은 반란군을 진압하러 갈 때 팔공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올린 글이고, 「공산대왕사제문(公山大王謝祭文)」은 반란군을 진압한 뒤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팔공산 산신에게 올린 글이다.

이규보는 1207년(희종 3)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된 이후 문관으로서 출세의 길을 달려 우정언·우사간을 거쳐 중산대부 판위위사·추밀원부사·참지정사 등을 역임하였다. 1237년(고종 24)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守太保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러 관직에서 물러났고, 1241년 9월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규보 저술로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있다.

[묘소]

이규보의 묘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에 있으며,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상훈과 추모]

이규보문순(文順)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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