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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14
한자 吳命恒
영어공식명칭 Oh Myunghang
이칭/별칭 사상(士常),모암(慕菴),영모당(永慕堂),충효(忠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 오명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19년 - 오명항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20년 - 오명항 경상도관찰사 이임
몰년 시기/일시 1728년연표보기 - 오명항 사망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묘소|단소 오명항 묘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묘소|단소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 경기도 안성시 낙원동 609-1
묘소|단소 영모암 -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해주(海州)
대표 관직 경상도관찰사|우의정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오명항(吳命恒)[1673~1728)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사상(士常), 호는 모암(慕菴) 또는 영모당(永慕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고, 할아버지는 오도융(吳道隆)이다.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고, 어머니는 영의정 여성제(呂聖濟)의 딸 함양여씨(咸陽呂氏)이다. 부인은 최기창(崔起昌)의 딸이다. 형 오명준(吳命峻)과 아우 오명신(吳命新)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오명항은 1673년(현종 14)에 태어났다. 1705년(숙종 31)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설서·사서·부수찬·이조좌랑·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19년 5월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경상우도 균전사를 겸임하여 양전(量田)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팔공산의 가산산성(架山山城)과 성주의 독용산성(禿用山城), 진주의 촉석산성(矗石山城), 문경의 조령산성(鳥嶺山城)을 새롭게 보수하였다.

오명항은 1720년 9월 청나라에 가는 진하사(陳賀使)에 임명되어 경상도관찰사에서 이임하였다. 1724년에 영조가 즉위하고 소론이 실각하자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1727년에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등용될 때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판의금부사로 난을 평정하여 분무공신(奮武功臣)이 되고 해은부원군(海恩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이후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사망하였다.

[묘소]

오명항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오명항충효(忠孝)라는 시호를 받았다. 경기도 안성시 낙원동 609-1에 1744년(영조 20) 건립된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吳命恒先生討賊頌功碑)’가 있으며,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의 영모암(永慕庵) 영당 안에는 1728년에 건립된 오명항 효자정문이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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