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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10
한자 安熹
영어공식명칭 An Hee
이칭/별칭 언우(彦優),죽계(竹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1년연표보기 - 안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5년 - 안희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8년 - 안희 대구부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13년연표보기 - 안희 사망
부임|활동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순흥(順興)
대표 관직 대구부사

[정의]

조선 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안희(安熹)[1551~1613]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언우(彦優), 호는 죽계(竹溪)이다. 안희의 아버지는 형조참의를 지낸 안공진(安公軫)이며, 어머니는 안택(安宅)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활동 사항]

안희는 1551년(명종 6)에 태어났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성균관전적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金海)에서 의병을 일으켜 곳곳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그 뒤 형조정랑·어모장군을 거쳐 장단부사·단양군수를 지냈는데, 선정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대학(大學)』과 숙마(熟馬)[길이 잘 든 말] 한 필을 하사받았고 군민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안희는 1608년 8월에 정경세(鄭經世)의 뒤를 이어 대구부사로 부임하였다. 1609년에 가뭄이 들었는데, 대구 지역에서는 가뭄이 들면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왕옥산(王屋山)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 안희기우제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 왕옥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뒤 소유정(小有亭)을 방문하였다. 채응린(蔡應麟)이 건립한 소유정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으나 채응린의 아들 채선길(蔡先吉)이 중건하여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던 명소였다. 안희소유정에 올라 전임 대구부사 정경세가 지은 소유정에 대한 시에 차운하여 시를 한 수 지었다. 안희의 시들은 『소유정 제영록(小有亭題詠錄)』이라는 필사본 책자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안희는 1613년(광해군 5)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안희의 저술로는 『죽계집(竹溪集)』 4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안희는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던 용연사(龍淵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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