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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82
한자 裵泄
영어공식명칭 Bae Seol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대구부 아전

[정의]

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활동 사항]

배설(裵泄)[?~?]은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의 아전이었다. 『대구읍지』「환적」 조에 따르면, “배설은 기지가 있고 총명하였으나 사람됨이 교활하여 법을 멋대로 남용하니, 수령들이 대부분 배설에게 기대어 정치를 하였다. 배설이 만년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전후의 수령들은 내가 모두 거느리고 살았는데, 오직 금유(琴柔)옥고(玉沽)는 내가 모시고 살아야 하였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금유는 지대구군사로 부임하여 1444년(세종 26)에 금학루(琴鶴樓)[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50번지 일대]를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금학루서거정(徐居正)의 「대구십경」 중 학루명월(鶴樓明月)로 노래되었다. 옥고는 1408년(태종 8) 무렵 지대구군사로 부임하였다.

이러한 배설에 대한 기록은 금유옥고가 향리들의 득세 농간 속에도 지방 행정을 잘 펼쳤다는 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시 유력한 이족과 향리들의 결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 초기 향리 직제 개혁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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