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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79
한자 朴應川
영어공식명칭 Park Eungcheon
이칭/별칭 혼중(渾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64년 - 박응천 연경서원 건립에 기여
몰년 시기/일시 1581년 9월연표보기 - 박응천 사망
부임|활동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묘소|단소 박응천 묘소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반남(潘南)
대표 관직 대구부사|한성부서윤|사재감정

[정의]

조선 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박응천(朴應川)[?~1581]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혼중(渾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상주목사 박임종(朴林宗)이고, 할아버지는 이조정랑 박조년(朴兆年)이다. 아버지는 지제교 박소(朴紹)이며, 어머니는 홍사부(洪士俯)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부인은 김희려(金希呂)의 딸 순천박씨(順天朴氏)이며, 아들은 박동현(朴東賢)·박동호(朴東豪)·박동로(朴東老)·박동준(朴東俊)·박동민(朴東民)·박동선(朴東善)이다. 동생은 박응순(朴應順)·박응남(朴應男)·박응복(朴應福)·박응인(朴應寅)이다.

[활동 사항]

박응천은 1543년(중종 38) 식년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왕자사부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태인현감을 거쳐 형조정랑·호조정랑·봉산군수·고양군수를 지냈다. 그 후 대구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이천부사·수원부사·광주목사·양주목사를 거쳐 군자감판관·군기시첨정·한성부서윤·예빈시부정·사재감정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박응천은 대구부사로 있을 때 단종(端宗)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후손 박충후(朴忠後)를 노비문적에서 빼내어 천역을 면하도록 해 주었다. 또한 1564년(명종 19) 상량한 연경서원(硏經書院)의 터를 공전(公田)으로 바꾸어 주었고, 재목과 기와를 제공하여 대구부 유학의 산실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581년(선조 14) 9월에 사망하였다.

[묘소]

박응천의 묘소는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응천은 좌찬성으로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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